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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저자 Oct 22. 2021

[여름호] 다섯째주, 시언 : 어느 시장가의 개

여름호 다섯번째 주제 : free(자유주제)

 아직 해가 고개도 내밀지 않은 새벽녘, 창밖으로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리어카 끄는 소리, 자전거 종 딸랑이는 소리, 굳게 닫힌 셔터를 올리는 소리. 잔뜩 드르륵, 끼익하는 소리가 지나가고 나면 어두운 골목에 조금씩 불빛이 밝아온다. 그리곤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집은 이 웅성거림에 가장 늦게 합류한다. 시장에서 살더라도, 아침잠은 챙겨야 한다는 엄마의 철학 덕에 우리 가족은 웅성거림 속에서 설 잠을 한 시간 가량 더 잘 수 있다. 상인들의 아우성을 뒤로한 채 이리저리 뒹굴다 보면 금세 알람이 울린다. 대충 옷가지를 차려입고 내려가니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아마르’가 가게 셔터를 올리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더라도 항상 반듯한 머리를 유지하는 아마르는 파키스탄에서 건너온 노동자다. 


"굿모닝, 잘 자서요?”

"응. 오늘도 머리 반듯하네?” 

"베리 굿. 땡큐.” 


유독 시옷 받침을 발음하는 걸 어려워하는 아마르는 매번 ‘베리 굿’이라는 말을 쓴다. ‘아주 좋다’는 의미가 아주 좋다면서. 아마르는 항상 좋다고 한다. 실수를 해도, 혼나도,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좋다고 한다. 좋다고 해야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면서. 긍정적인 아마르는 일손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판에서 벌써 삼 년 째 자리를 버티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그의 ‘베리 굿’은 말이 아닌 태도에서부터 나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마르 오늘도 부지런하네?” 

"베리 굿. 굿모닝 사장님, 잘 자서요?” 

"그럼. 아마르도 모닝커피?” 

"네. 부타케요.” 


가게 건너편에 잡화상 사장님은 아마르와 절친 사이다. 시장가에 외국인들이 들어온다며 이유도 없는 천대를 했던 잡화상 사장은 느닷없이 쏟아진 폭우에 가게가 무너질 뻔했던 순간, 아마르가 가게를 지켜줬던 이후로 180도로 태도가 바뀌어 매일 같이 아마르 옆에서 붙어 지낸다. 그가 아침마다 커피를 타서 건네는 것도 일종의 죄책감과 고마움, 그리고 가까워지며 알게 된 그와의 동질감이 만들어낸 친밀감 덕분일 것이다.

옆 생선가게의 김씨는 지난밤에 잡혔을 생선들을 수조에 채워 넣었고, 그 앞 반찬가게 정 할머니는 늘 그렇듯이 가게 앞을 빗자루로 쓸어내리고 있었다. 매일 아침 보던 풍경이었다. 잠시 뒤면, 시장 내 소비자를 향한 바가지 행위를 금지하라는 어느 공무원의 목소리가 시장 전체에 퍼져나갈 것이고, 그 뒤로 ‘그’가 나타날 것이었다. 



'그’가 시장에 등장했던 건, 어느 여름날이었다. 폭우가 내려 시장 곳곳에 피해가 심각했던 때였는데, 어수선한 시장가로 그는 리어카에 신문을 잔뜩 채워서 질질 끌고 갔다. 그 신문 더미 위에는 라디오인지 스피커인지 모를 물건이 놓여있었고, 항상 똑같은 찬송가가 흘러나왔다. ‘내 맘속에 새 희망 주시네 -’ 하고 자꾸만 반복되는 구절은, 싸구려 스피커를 타고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흘러나와 정말 희망을 받을 수 있을지 의심하게 되는 찬송가였다. 

그런 ‘그’ 옆에는 늘 개 한 마리가 있었다. 누르스름한 털을 가진, 진돗개인 것 같기도 한 그 개는 리어카 손잡이에 묶인 줄을 따라 걸어 다녔는데, 꽤 큰 덩치와는 다르게, 가까이서 보면 비쩍 마른 모습이었다. ‘그’는 그렇게 개와 함께 걸어 다니다 어느 골목 한쪽에 멈춰 서서 ‘신문사세요.’라고 외쳤다. 몇몇 사람들이 ‘그’에게 다가가 여기서 신문을 팔면 안 된다고 말해도 그는 꿋꿋이 신문을 사라고 외쳤다. 더욱 이상했던 점은 그가 팔았던 신문들은 당일 날짜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항상 일주일 전의 나온 신문들을 리어카에 한가득 채우고 상인들을 상대로 신문 장사를 펼쳤던 것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상인들은 ‘재수가 없으려니 홍수 이후에 미친놈이 왔다.’며 혀를 쯧쯧 찼고, 몇몇 덩치 좋은 상인들은 직접 ‘그’를 시장 밖으로 끌어내려 했지만, ‘그’가 데리고 다니는 개 때문에 누구도 함부로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는 아침, 오후, 저녁, 자기 멋대로 시장에 등장하더니, 어느 날부터는 해가 뜨는 무렵 늘 같은 시간에 나타나 아침 신문을 팔고 한 시간이 지난 뒤에 감쪽같이 사라지곤 했다. 그 아침 신문은 여전히 일주일이 지난 신문이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지만, 몇몇 상인들이 과일이나 물건을 감싸는 용도로 몇 부를 사주곤 했다. 미친놈 보내느라 힘 낭비하느니, 매일 한 시간만 참는 것을 선택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렇게 그가 시장에 나타난 지 한 달이 흘렀을 무렵이었다. 그는 여느 때처럼 리어카를 끌고 시장 골목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고, 나는 어렴풋하게 들리는 찬송가 소리를 따라 그가 어디쯤 있을지 예측해보곤 했다. 

유독 조용했던 그 날은 찬송가 소리가 더욱 두드러지게 들려왔다. 한 골목 끝에서 잔잔히 들려오던 찬송가 소리는 우리 가게 앞을 지나며 지직거리는 음질을 들려주곤 다시 서서히 멀어져갔다. 그러더니, 어느 닫힌 가게 앞에서 멈춰 섰다. 종종 그에게 신문을 사주던 과일 가게였는데, 늘 분주하게 움직이던 가게가 그날따라 굳게 닫혀있었다. 어디 휴가라도 갔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그 앞에 한참을 가만히 멈춰 서 있었다. 그는 찬송가 테이프가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재생되지 않을 때까지 서 있었다. 그 순간, 개가 짖기 시작했다. 

한순간 짖기 시작한 개는 시장 전체가 떠나가라 크게 짖었다. 조금 지나지 않아, 시장의 모든 상인이 그 가게 앞으로 몰려들었고, 그와 개를 둘러싸고 쳐다보기 시작했다. 개는 높고 강하게 짧은 간격으로 짖었고, 마치 과일 가게에 들어가고 싶다는 시늉이라도 하듯이 셔터를 발로 긁기도 했다. 굳게 닫힌 과일가게는 미동도 없었으며, 그는 그 뒤에 가만히 서서 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욕을 하기 시작했다. 역시 진작 시장에서 내쫓아냈어야 한다며, 덩치 큰 족발 가게 사장에게 말려보라며 등 떠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강렬하게 짖는 개에게 맞설 수는 없었다. 그때, 사람들 틈을 비집고 아마르가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아저씨. 강아지 지저요. 왜 지저요?”


심각한 사람들 표정 사이로 아마르는 웃으며 그와 개에게 다가갔다. 아마르는 미친개가 두렵지도 않은지 늘 지어 보이던 사람 좋은 미소를 하고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와 개는 아마르가 그들의 바로 뒤에 올 때까지 뒤돌아보지도 않고 가게만 뚫어지라 쳐다볼 뿐이었다. 


"무슨 일 이서요?” 


아마르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부르자, 그때서야 그는 아마르를 쳐다봤다.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두꺼운 눈꺼풀과 진한 다크 서클, 흰자위의 붉은 핏줄들이 잔뜩 올라온 그는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피곤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아주 서늘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마치 죽음이라도 꿰뚫어 보듯 아마르를 노려봤다. 그가 뒤를 돌아 아마르를 노려보자, 개도 짖는 것을 멈추고 아마르를 쳐다봤다. 곧이어 으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개는 당장이라도 아마르에게 뛰어나갈 것만 같았다. 


"왜 지저? 착하지. 그러면 안대. 베리 굿” 


아마르는 노려보는 그의 눈빛에도, 위협하는 개도 무섭지 않은 듯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자세를 낮춰 자신을 금방이라도 물 것 같은 개에게 팔을 내밀어 손바닥을 펴고 멈추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개는 아마르의 팔이 자신에게 다가올수록 더욱 으르릉거렸다. 아마르의 팔이 개의 머리에 닿을 찰나, 그는 아마르의 팔을 쳐내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마시오. 곧 갈 거니까.” 

"아저씨. 베리 굿. 지즈면 안 돼. 사람들 시러해요.” 


아마르는 다시 몸을 일으키며 그를 마주 봤다. 그는 사람들이 그만큼이나 모인 것을 이제야 알았는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아마르에게 용기를 얻은 상인들은 다시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조금씩 웅성거리던 소리는 점점 커졌고, 몇몇 사람들은 그에게 소리치며 다그쳤다. 그럴 때마다 개는 몸을 움찔움찔하며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했지만, 정작 누구에게 달려들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과일 가게를 잠깐 바라보고는 리어카를 옮길 채비를 했다. 리어카의 바퀴를 들고 스피커의 재생 버튼을 눌렀고 찬송가가 다시 흘러나왔다. 그 순간, 개는 아마르에게 달려들었다.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상인들은 모두 몸이 굳거나 비명을 질렀다. 개는 아마르의 팔뚝을 깊숙이 물었고, 아마르는 개의 턱을 붙잡고 뒤엉켜 굴렀다. 아마르의 피는 시장 바닥에 흩뿌려졌고, 아마르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간신히 개의 다음 공격을 막고 있었다. 개가 짖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리어카 한쪽에서 매끄러운 몽둥이를 꺼내더니 개를 때렸다. 개는 소리도 내지 않으며 바닥에 나뒹굴었고, 그는 멈추지 않고 마구 매질을 했다. 그때서야 시장 사람들은 아마르에게 다가갔고, 매질을 끝낸 그는 쓰러진 개를 리어카에 태운 뒤, 찬송가 소리와 함께 시장 밖으로 사라졌다. 그가 나가기 전까지 그를 잡아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구급차에 실려 가 응급치료를 받고 온 아마르에게 엄마는 그럴 때는 나서면 안 된다며 꾸짖었고, 무섭지 않았냐고 묻는 내게 아마르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개 많아요. 안 무서워요. 불쌍해요 개. 베리 새드.’라고 말했다. 나는 아마르의 용기가 순수함에서 나온 건지 긍정적인 태도에서 나온 건지, 아니면 그저 고향에서의 동질감에서 나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는 여전히 매일 같이 개와 함께 시장으로 나왔고, 사람들은 더 이상 그에게 신문을 사지도, 아무런 말도 걸지 않았다. ‘그’는 시장에서 철저히 무시되는 존재가 되었다. 

그날 사건이 있었던 과일 가게의 사장이 심정지로 죽었다는 사실은 그 사건이 일어나고 한참 뒤에 알려진 일이었다. 



- 시장 상인 여러분들의 부흥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내 문구가 끝나자, 골목 한쪽에서 익숙한 찬송가 소리가 들렸다. 역시나 ‘그’는 커다란 리어카를 끌며 시장 골목으로 들어섰다. 리어카가 울퉁불퉁한 시장 바닥을 굴러가 족발집, 수선집과 김 씨네 생선가게를 지나 우리 가게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금방 지나가야 할 찬송가 소리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상한 마음에 가게 밖을 살펴보니, 그와 아마르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그의 리어카를 가득 채우던 신문 더미들은 어디로 갔는지 텅 비어있었고, 오로지 찬송가가 흘러나오는 스피커만 놓여있을 뿐이었다.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개가 없었다. 항상 리어카의 손잡이에 목이 묶여있던 그 개가 없었다. 개를 묶어둔 목줄은 누가 잘라갔는지 손잡이에 묶인 부분만 남아있었고, 개에 연결되지 않은 목줄만 매달려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아마르와 몇 마디를 더 나누더니, 텅 비어버린 리어카를 다시 끌고 갔다. 찬송가 소리가 저 멀리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아마르에게 물었다. “아마르. 뭐래?” “개가 사라졌대요.” “오. 잘됐네. 베리 굿 아니야?” 나는 나도 모르게 웃으며 얘기했고, 아마르는 어느 때보다 가장 뚜렷한 발음으로. 항상 짓던 미소를 잃은 채 말했다. “사장님. 굿 아니에요. 개가 사라졌잖아요.”  



from.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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