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느 저자 Oct 20. 2021

[여름호] 다섯째주, 하다 : 유유자적(流流自適)

여름호 다섯번째 주제 : free(자유주제)

나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기를 갈망해왔다. 즉, 어떤 것에 집착하지 말고 그저 세상이 흐르는 리듬에 맞춰, 나에게 다가오는 상황은 기꺼이 반겨주고 멀어지는 상황은 쿨하게 넘기라는 뜻이다. 여행으로 인해 한껏 늘어진 여유 탓에 이 문구를 좋아했고, 그랬기에 ‘나’ 외의 모든 환경적인 요소에 그리 신경을 안 쓰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것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 전에 관계를 차단했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잔인한 말이지만, 내가 손수 이 관계를 안고 바다에 다가가 흘려 보냈었다. 잘 흘려보내지 못했는지 딱 아프지 않을 정도의 모래알이 신발 안에 굴러다녀, 가끔 찝찝했지만 빼낼 기운이 없어 발가락을 꼼지락 꼼지락거리며 억지로 빈 곳에 밀어 넣었다.
이 행위가 익숙해질 때 쯤. 불쑥 걸려온 전화는 나의 맘을 순간적으로 흔들었고, 그래서 무심코 받고 말았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정적이 흘렀고, 다음에 보자는 맘에 없는 소리를 하면서 끊었다. 여전히 나는 모래알을 빼낼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가시적으로 2021년의 중반을 넘어섰고 가을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시간은 혼자만 흘러가는 것이 아닌 우리 삶의 많은 것들도 파도처럼 휩쓸어간다. 그중에는 관계, 기억, 감정 등이 있다. 나는 휩쓸리지 않으려 손에 힘을 주지만 끝끝내 손아귀에서 많은 것들을 놓치고 말았다. 아니, 조금만 더 힘을 주면 휩쓸리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그저 핑곗거리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흘러가는 삶을 추구한다. 때론 붙잡아야 한다는 것도 안다. 다만, 그 순간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를뿐이다. 그러기에 오늘도 수많은 모래알이 신발 속을 굴러다니지만, 애써 밀어내본다.



from.하다

이전 18화 [여름호] 다섯째주, 시언 : 어느 시장가의 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