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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저자 Oct 18. 2021

[여름호] 다섯째주, 김라면 : 그저 그런 일상

여름호 다섯번째 주제 : free(자유주제)

평범한 점심이었다. 지한은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어제 잠결에 본 먹방이 생각나서였다. BJ는 프라이팬 가득 고소한 로제 파스타를 조리해놓고, 깔끔하게 먹어 치웠었다. 군침 도는 먹방을 다시 들여다보던 지한은 로제 파스타를 먹으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저 그런 일상이 반복된 지는 꽤 되었다. 지한은 몇 년째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연고도 없는 탓에 약속도 드물었다. 뭔가를 혼자 하는 것은 너무도 익숙해진 일이지만 외로움을 물리칠 수는 없었다. 타박타박, 길가에도 지한의 발소리만 들려왔다.


 큰마음을 먹고 학교 다닐 때는 몰랐던 ‘맛집’을 홀로 방문하는 길이었다. 강의실에서 동기들이 ‘그 집 파스타가 최고’라며 추켜세우던 것을 기억해, 인터넷에 검색했더니 먹방 BJ의 파스타와 유사해 보였다. 로제 파스타라는 이름은 아니었지만. 지한은 가게 앞에 멈춰서 숨을 골랐다. 


단독주택을 개조한 하얀 건물은 아름다웠다. 입구 쪽엔 가로로 기다랗고 좁은 창이 나 있어, 정원이 보였다. 그 창으로 들여다보이는 내부는 작은 2인용 테이블로 가득 차 있었다. 역시 친구와 왔어야 했을까. 쭈뼛거리며 가게에 들어서니 친절한 종업원이 그을 자리로 이끌었다. 


아, 창가 자리다. 정원과 입구가 보이는 긴 좁은 창. 홀로 창밖을 내다보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주문한 후에도 괜히 눈치가 보여 자꾸만 메시지를 확인하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꼼지락거렸다. 파스타가 나오는 시간이 이렇게 길었던가? 피클을 우적우적 씹어먹으며 창밖의 시들어버린 겨울 장미의 개수를 헤아렸다. 그러다 문득 정원에 이질적인 물건이 하나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서커스…?’ 서커스 천막을 축소해놓은 듯한 포근해 보이는 아지트. 흰색, 파란색, 분홍색이 엇갈려 배치된 어린이 텐트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 안에서 무언가 또르르-굴러 나왔다.


“주문하신 파스타 나왔습니다!” 

“아, 가, 감사합니다.” 


모락모락 연기가 나는 파스타를 받아들고, 지한은 다시 텐트를 살폈다. 아까 굴러 나왔던 건 뭐였지. 고개를 기웃거려도 보이지 않기에, 수저를 들었다. 파스타는 윤기가 흘렀고, 고소한 냄새가 가득했다. 옅은 주홍빛이 도는 소스는 촉촉하고 진했고, 동그랗게 말린 면은 가지런해 고급 식당에 온 느낌이 들었다. 포크를 빙글 돌리며 한입 크기로 면을 말아 수저 위에 얹고 입안에 밀어 넣을 때였다. 텐트에서 작고 새카만 것들이 굴러 나왔다. 


고양이였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을 것 같은, 손바닥만 한 고양이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검댕이처럼 작고 에너지 넘치는 새카만 아기 고양이. 고양이 네 마리가 마당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뛰다가 제 발에 걸려 넘어지고 옆의 친구에게 되레 화풀이 하고, 다시 텐트로 돌아가 몸을 뒤집고 누워 오뚝이처럼 온몸을 흔들어대기도 하고.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듯, 텐트 아래 숨어 번갈아 가며 고개만 빼꼼 내밀기도 했다. 지한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기계적으로 파스타를 입에 밀어 넣으면서도, 눈은 그들을 향해있었다. 부서질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에.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여전히 친구들에게서 날아든 답장은 없었다. 


어느새 접시는 바닥을 보였다. 우린 왜 이렇게 멀어져 버린 걸까. 지한은 그의 부서지지 않을 줄 알았던 세계를 떠올렸다. 계산을 하고, 부러 정원에 시선을 두며 식당을 나섰다. 낯선 이의 등장에도 그들의 세계는 부서지지 않았다. 지한은 왠지 서글퍼졌다. 자신의 세상은, 특별함이 부서진 그저 그런 일상일 뿐이라. 



from.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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