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
이제 겨우 하루 있었는데 마치 내 집인 마냥 자연스럽게 대문을 열고 코 노래를 부르며 방으로 들어가는 게 저 멀리 벗어던져 버린 신발 한 짝도 신이 나고, 추락하기 싫어 더 멀리 날고 싶은 종이비행기를 처럼 혼자 훅~하고 날아가 버린다. 겨우 묶은 흔적을 지워 낸 냄비에 슈퍼에서 가져온 라면 한 개를 끓여본다. 꿈을 꾸고 있는지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의 지렁이 마냥 꿈틀 그렸던 숙취는 어디로 간대 없고, 두 팔을 걷어 집 안 구석구석 청소를 한다. 또다시 그 사람에게서 온 문자 한 통 "고마워" 고맙다니 혼자 말을 중얼 그려보지만 어디선가 나를 훔쳐보는 기분이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뭔가, 나를 이렇게 혼란스럽게 만드는 어제오늘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시간들이 도깨비불에 홀리스 듯한 기분이 든다.
이 집에 오기 전을 되돌려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혼자 슬리퍼를 끌고 시내를 나왔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 기억을 되돌릴 수 있다니 무척이나 큰 역사를 이룬 듯 기쁜 박수를 치며 기뻤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그다음의 기억들이 다시 되살아 나겠지. 하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본다. 나는 "고맙다"라는 문자의 뜻을 그냥 복잡한 생각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루 종일 굶은 허기진 배를 라면으로 배를 채웠다 매콤한 국물까지 설거지조차 할 필요 없을 만큼 밑바닥에 구멍이라도 난 듯 금방
사라지고, 허기진 배는 반갑습니다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어둠이 찾아든 이른 저녁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할 일은 많았다 오늘 밤에 못 들어온다는 문자 메시지를 다시 보며 혼자만의 공간 속에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아니 오늘 저녁 온갖 청소를 다 해 볼 작정이었다. 윗옷을 벗어던졌다 한여름밤 열대야 인지 겨드랑이 사이로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린다. 씻어도 소용이 없을 듯하다. 흐르는 땀이 바지 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게 이왕 청소를 하는 거 소금에 절여진 굴비 마냥 땀에 절여진 옷들을 벗어 세탁을 한다.
오늘만 여기서 지내고 갈 생각이다. 정말 작은 주방 및 화장실을 열심히 청소했지만 별 효과는 없는 듯 청소를 한 건지 특별히 빛나는 곳 하나 없이 그저 그랬다. 방 안을 쓸고 닦았다 정말 얼마나 청소를 안 한 건지 하얀색 수건이 금방 연탄을 포장한 것처럼 시커멓게 되었고 방 천장 모서리 모서리 요란하게 질서 없이 창 틈 바람으로 춤추고 있는 거미줄을 걷어냈다. 목구멍 속으로 거미 몇 마리가 슬금슬금 들어온 듯 캑캑 됐지만 싫지는 않았다 나는 분명 이 집을 깨끗이 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