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거리
어둑어둑 짙은 어둠이 제법 깔려 왔다. 지하 작은방 창틈 사이로 밤바람이 수줍은 듯 몰래 들어오는 게 잠시나마 땀을 식힐 수 있었다. 몇 시간 아무런 생각 없이 룰루랄라 신나게 청소를 했지만 별 티는 나지 않은 채 수북이 쌓인 먼지만 겨우 걷어낸 듯하다. 그래도 마음이 홀가분하게 웃고 있다. 분명 낮에만 해도 거칠게 내쉬었던 내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던 지하가 깜깜한 어둠이 찾아오더니 어느 누구 하나 이 시간을 귀신같이 기다렸는지 짝짓기를 갈망하는 숫 놈의 고양이가 앙칼지게 야옹야옹 서로 상대를 차지하려고 심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녀 커플도 사방의 눈을 살펴 가며 아랑곳하지 않고 미래의 사랑을 약속한 듯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달콤한 키스를 나누는 게 물이라도 한 바가지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술에 취해 이리저리 정신을 해왕성 저 멀리 보내며 걷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작은 창 문틈 사이로 보이는 게 이제 갓 오픈 한 커다란 마트 앞에서 바람에 의해 춤을 추고 있는 풍선 같아 보인다. 상도덕이 없는 어느 몰상식한 청년은 담배꽁초를 휙 던져버리고 가래침 발끝에서 끌어올려 퉤 퉤 하고 뱉고는 다시 연거푸 담배 한 개비를 더 입에 물고 가 버린다. 심지어 눈에 보이는 작은 돌멩이마저 마치 축구선수 라도 되는 듯 발을 뒤로 빼고는 휘둘렀지만 돌멩이는 그 자리에 멈춰 메롱 안 맞았지 하며 그대로이다. 헛 발만 찬 셈이다. 쌤통이다 이놈아!
도둑고양이처럼 숨어서 몰래 보는 밤거리가 참 구경 할 만하다. 낮에 세탁했던 이불이 아직도 눅눅하고 입고 있었던 바지 그리고 티셔츠도 아직 마르지 않았다 쥬리닝 바지라도 말았으면 냄새나고 빛바랜 이 늬들느들한 팬티라도 세탁할 수 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루만 더 입고 버틴다 한들 나도 세상도 세계도 별 이상이 없기에 그냥 입은 채로 방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웠다. 하루 종일 조용하기만 휴대폰을 보는데 정녕 나를 찾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단 말인가~와이파이가 안 터지는 지하다 보니 하루 종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 졸리는 눈을 억지스레 뜨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단란한 보금자리를 치워 버린 내가 괜히 미안하게 바퀴벌레 한 쌍이 집을 찾아 돌아다니는 모습이 마치 집을 잃은 채 남의 집에서 이틀째 묶고 있는 내 처량한 모습 같았다. 내가 집을 치우지 않았더라면 저 바퀴벌레 들은 따뜻한 집 안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사랑도 나누겠지 괜히 미안하고 남의 삶을 무너 어린 죄책감이 들었다
어두웠던 거리도 불을 태우며 한바탕 소동이 끝났는지 잠시 조용하다. 불을 끄고 누웠지만 커튼 하나 없는 창틈 사이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에 그다지 방안의 어둠을 느끼지 못했고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아마도 뜬 눈으로 새벽을 맞이하고 아침을 맞이하겠지. 순간 나도 모르게 무거운 눈꺼풀을 잡지 못하고 잠이 들었으나, 이상한 악몽에서 벗어나려고 바둥바둥하며 깨어났는지 모른다. 네모난 나무 사각 틀에 붙잡혀 가는 신세에 놀란 동태눈 마냥 나는 지금껏 내 삶에 있어 제일 큰 눈을 뜨고
있었다. 어깨 넓은 깡패들에게 둘러싸여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짓 밟히고 많이도 얻어맞았다. 심지어 입고 있던 옷들마저 다 빼앗기고는 지금처럼 팬티 한 장만 걸친 채 복싱 선수가 12R까지 다운 한 번 되지 않고 끝까지 버텨 싸워 승리의 손을 들어 올릴 거 같은 얼굴처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겨우 눈을 뜨고 "살려주세요 저 좀 살려주세요" 하며 잠이 깨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을 만져 보지만 긴 한숨을 쉬며 그대로 있었다 천만다행이라는 안도감으로 옆으로 돌아누웠다. 벽지가 군데군데 뜯어져 있고, 얼마나 많은 잡종의 벌레들이 왔다 갔는지 그들의 흔적이 눈앞에 보였다. 저 녀석들도 생명줄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겠지 재수 없게 사람 눈에 띄어 살충제가 뿌리는 비의 공략과 매서운 손바닥으로 죽어 나갔을 것이다. 에구 불쌍한 녀석들 하며 마음속으로 내뱉었다. 아침이 오는지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나도 모르게 뻐근한 몸을 이끌고 일어났다. 밤 온도가 꽤나 높았던 모양이다 축축했던 이불도 내 옷 가지도 깨끗이 말라 옷을 입고 잠시 밖으로 나왔다. 아직 해가 뜨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바빠 보였고, 어제저녁 창문 사이로 보지 못했던 상황들이 지금 길바닥만 봐도 전쟁이 일어났는지 많이 어수선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새벽을 밝히는 쓰레기 자동차의 불빛이 내 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