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그리고 또다시 찾아온 나의 두 번째 사랑은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보충수업 시간 생물을 담당하시는 교생 선생님이 새로 부임해 오셨다. 칠판에 하얀색 분필로 이니셜로 LHJ이라고 크게 이름을 적었다. "이름은 이현정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교생 선생님으로 첫 부임을 하게 되어 아마 가장 기억에 남는 첫 교정이 될 듯싶습니다. 우리 좋은 추억 많이 만들어 봅시다" 남자고등학생들 사이에서 23살 교생 선생님은 민소매에 미니스커트 치마를 입고 오셨다. 호기심 많고 성에 눈이 뜨이기 시작한 18살 남학생들의 돌고래 창법 괴성으로 박수를 치며 환호를 했고, 나는 번호가 1번이어서 항상 선생님 보조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서 검은 점 하나 없는 말끔한 얼굴에 선생님과 가까이 지내면서 갑자기 얼굴 전체에 첫사랑으로 인한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다. 정말 선생님과 함께 하는 시간은 늘 웃음이 나왔고 나도 모르게 선생님 생각에 너무 행복했다. 솔직히 나는 공부를 못 했다. 하지만 잘하려고 했던 노력만큼은 전 세계 학생들 중 최고였을 거다. 매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채점 발표에는 항상 30점 40점 이 전부였지만 생물 시험만큼은 80점에 가까운 실력으로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받기도 했다. 나는 학교로 발신인 이 없는 편지를 선생님 앞으로 쓰기 시작했다."선생님께서 학교에 오시고부터 저는 학교생활이 너무 재미가 있고 행복합니다 친구도 필요 없고 선생님만 계시면 너무 좋을 거 같아요. 제게 첫사랑으로 영원히 기억될 거 같아요. 선생님 고맙고 감사해요." 하며 매일 같이 편지를 썼다
사실 첫사랑은 아니지만 첫사랑이라고 해야 더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났다.
나를 밝히지 않았지만 선생님과 읍내 데이트로 분식을 먹고, 노래방 가서 노래를 부르고, 떨리는 마음으로 슬며시 손도 잡았던 순수한 10대의 첫사랑은 참 행복했다 선생님의 교생 실습은 개학이 다가오면서 끝이 났고, 나는 주말만을 기다리며 진주행 고속버스를 타고 선생님을 뵈러 갔다. 시골 촌놈이 진주 시내에 나가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았고 나 또한 진주 시내로 가는 버스는 선생님을 뵈러 가는 길이 처음이었다.
버스 안에서 많은 상상을 하게 했다. 조금만 더 성장하고 키가 컸으면 미래의 선생님의 남편이 되어 아들딸 낳아 잘 키우면 참 좋겠다. 선생님이 아닌 여보 당신 하며 웃으며 살아갈 텐데, 내 성장을 가장 빠르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버스 터미널에 나와 계셨고, 나를 데리고 작은 분식집에 앉아 떡볶이 국물에 김밥을 찍어 먹고 입가에 묻은 빨간 떡볶이 국물을 선생님은 손으로 닦아 주시는데 그 따뜻한 손길이 너무 고마워 나는 고의적으로 입가 전체에 묻혔는지 모른다. 맵지도 않은 떡볶이를 괜히 매운 척하며 선생님께서 떠 주시는 어묵 국물이 참으로 따스하고 맛이 있었다. 선생님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학창 시절 성적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없었던 거 같다. 하지만 선생님과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학교에 소문이 나면서 선생님은 나를 잘 타일러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가면 선생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 했고,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발령을 받아 오늘 같은 이 시간은 다시는 가질 수 없다고 하셨다. 이루지 못할 사랑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학창 시절 행복을 알게 해 준 선생님께 정말 감사를 드린다. 지금 LHJ 선생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그렇게 교생 선생님과의 행복한 사랑은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처럼 뭔가 허전함으로 끝내고 말았다.저의 학창시절을 가장 행복하게 해 주셨던 이현정 선생님 정말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