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교복은 크게 맞추고 3년을 입어야 한다며 엄마 손 잡고 고등학교 교복을 맞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대학이라는 입시경쟁을 해야 하는 3학년이 되었다. 면도를 해야 할 만큼의 콧수염이 자라고, 매일 씻지 않으면 몸에서 사춘기 냄새가 풍기는 19의 나이, 헤어스타일 또한 거울 앞에서 얼굴 표정에 많은 변화를 주면서 신경을 썼던 19의 나이, 또 다른 웃음을 주는 사랑이 찾아왔다. 햇살이 참 좋았던 어느 날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읍내 사거리에 서 있었다. 나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교복을 입은 한 여학생이 내 주머니 안에 쪽지를 넣어주고 뒤도 안 돌아보며 뛰어가는데 나는 뭔가 얼떨떨함에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주위 시선을 살피며 주머니 속 편지를 꺼내 보았다."너를 오래전부터 지켜봤어, 너에게 고백을 못 하고 짝사랑으로 끝날 수는 없어 어렵게 용기 내어 말하고 싶었어. 너를 좋아했어 그리고 꿈속에서 네 손을 잡고 걷는 꿈까지 꾸었네, 내일 지금의 이 시간에 또다시 너를 보러 올게. 그냥 너를 보고 갈 테니 너는 신경 안 쓰도 돼. 지금 이 편지를 쓰는 것도 너무 떨려. 이제야 짝사랑했던 속앓이가 좀 풀리는 거 같아"
잠시 동안의 사랑을 알게 해 준 한 살 연상의 누나와, 대학을 가서 멋진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랑의 추억을 만들어 준 선생님을 꼭 찾아뵈야지 했던 마음이 잠시 잊을 정도로 심장이 파장을 일으키면서 마구 뛰었다. 어떤 말로 소녀의 고백을 받아야 할지, 아니면 거절을 해야 할지 저녁 내내 고민을 하면서 뒤 날 다시 이 소녀를 만나게 되었고, 나는 서로에게 힘든 고3 생활을 함께 이겨내어 보자고 "고마워 힘든 고3 생활에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친구가 되어줄게"라는 작은 쪽지의 답장을 전해 주고 우리는 서로 갈 길을 갔다. 우리는 그렇게 남들이 이야기는 설렘이라는 단어로 만남을 시작했고 사귀기 1일이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평일은 학교 수업에 야간자율학습까지 만날 시간은 없었지만 집으로 가는 시간 잠시 시간을 내어 읍내 사거리 빵집에 서로 주고받는 편지를 놓아주며 만남을 가졌다. 주말이 되면 우리는 나란히 손을 잡고 우리들의 미래를 상상하며 시골길을 걸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가고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어른이 되자고 약속까지 하며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꼭 같은 대학을 가서 캠퍼스를 누비며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 보자고 열 손가락 걸고 약속을 하면서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내내 가장 큰 힘이 되었던 친구인 거 같았다. 하지만 서로 공부하는 습관과 환경이 달랐기 때문에 학창 시절의 순수한 사랑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서로 다른 대학을 가게 되고 살아가는 시간이 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헤어짐이라는 단어를 받게 되었다. 이별 속에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었고, 이별한 지 1년 후 우리는 부산 어느 대학가 근처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교복 차림의 순수한 여고생이 아닌 화장으로 대학생이 된 그 소녀는 소녀가 아닌 예전 교생 선생님을 생각나게 하는 이쁜 아가씨로 변해 있었다. 나를 보더니 "그대로네, 어떻게 지냈어?" 오랜만에 만났지만 낯설지가 않았다. 어제 봐 온 친구처럼 머릿속 이야기 실타래가 얽히지 않고 너무 쉽게 풀렸다. 가슴 아픈 이별이 아닌 자연스러운 이별이었기에 서로 원망하거나 이별에 대해 묻지는 않았다. 소녀는 대학을 다니면서 몇 명의 남자들과 같은 취미를 가지면서 썸을 탔다는 이야기부터 나를 잊어야지 하면서 문득문득 생각이 났다며 여자 친구가 있을까 없을까 많은 상상을 해 보았다고 했다.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고백하지 못하 짝사랑만 딱 2번 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왜 만남을 계속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 시절 우리가 서로 잘 통할 수 있었던 취미는 탁구였다. 가끔 하교 후 조그마한 탁구장에서 탁구를 치며 서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며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신나게 웃었던 그 추억이 생간 난다. 이 친구 또한 어디서 뭘 하며 살고 있을까! 고향에 내려가면 우연히라도 만날 수 있을까! 어는 한 남자의 아내로 귀여운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