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그리고 20살 꽃다운 청춘 대학에 입학하면서 주인집 할머니가 계신 방 3개 주방 1개가 달린 하숙집이 아닌 자취생활을 했던 대학 시절이 생각났다. 얼굴에 시골 촌 티가 묻은 채 심란했던 고3의 시절을 보내고 낭만으로 설레고 잔디밭 캠퍼스 로망으로 가득 찬 대학에 입학을 하면서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바보처럼 열심히 노력했던 만큼보다 전혀 성적이 나오지 않아 눈치작전으로 관심이 없는 학과 전공과목으로 알아듣기 힘든 강의를 출석으로 채우기 일쑤였고 그나마 위로된 것이 문학 동아리 생활이었다. 낯선 도시에서 가끔 향수병에 시달려 외롭고 괴로운 쓸쓸한 눈물을 흘렸지만 내 어깨를 토닥토닥 위로해 준 것은 문학 동아리로 인해서 대학 생활 및 삶의 패턴을 바꿀 수 있었다. 마시지 못했던 술을 배우게 되었고 저녁 9시만 되면 밤하늘 별을 보며 평상에 누워 여름을 보냈던 시골 밤과는 달리 화려한 네온 불빛 사이로 여름밤을 질주해서 달리는 도시 생활은 정말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루하루 적응해야만 했던 대학 생활 도시생활 그리고 술잔의 비율, 하늘 같은 선배님의 말씀, 잔잔한 파도의 밤바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점점 나를 변화시켜 갔다. 어린 시절 추억들의 순수한 사랑이었다면 지금 눈앞에 나타난 선배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선배는 말이 없이 늘 수줍게 웃기만 했다. 만화에서 나오는 푸근한 호호 아줌마 같았다. 이 선배 때문에 강의가 끝나면 동아리방에 더 왔는지 모른다. 문학 동아리를 하면서 1주일 1번씩은 책 토론을 했고, 그 토론이 끝나면 학교 정문 아래 단골 통영 식당이라고 술 한잔하거나 밥을 먹고 외상장부에 적어 놓으면 가끔 선배님들이 오셔서 외상값을 갚아주시기도 했다. 가족들보다 더 가까이 지내왔던 동아리 생활이다 보니 흔히 말하는 캠퍼스 동아리 부부도 많았다. 물론 사귀다 헤어지면서 동아리를 탈퇴하고 안 좋은 모습들도 많이 봤지만 나는 호호 아줌마 선배를 계속 짝사랑하며 대학 생활을 즐겁게 했는지 모른다.
점심시간이나 학교 강의가 끝나면 나는 선배 강의 시간을 보고 항상 뒤 문에서 기다렸다. 우리들만의 떡볶이 아지트가 있기 때문이다. 선배랑 함께 하는 시간은 너무나 행복했다. 학교 축제 시 늘 선배 옆에서 보조 역할을 했고 선배랑 야구장 데이트를 자주 했다 선배는 야구에 대해 1도 몰랐지만 야구장에 가면 가슴이 뻥하며 열린다고 했다. 고백으로 인해 서로 어색한 사이로 돌아올까 봐 고백조차 못 하고 혼자만의 짝사랑을 꽤 오래 했다. 군대 가는 날 선배의 배웅으로 부산역에서 마침 선배의 손을 잡을 수 있었고 웃으며 전역할 때까지 옆에 남자친구가 있으면 안 된다고 고백 아닌 고백으로 입영열차를 탔다. 선배는 학교를 졸업하고 유치원 선생님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군대에서 주어지는 자유시간이 되면 늘 유치원으로 전화를 해서 선배랑 통화를 자주 했다. 선배는 다정하게 나를 반겨주었고 휴가 나온 날 선배랑 학교 캠퍼스 데이트를 하면서 맥주를 한잔하면서 용기 있게 고백을 했다. 선배로 인해 군 생활 견디며 이겨낼 수 있다고 선배는 조심스럽게 나를 좋은 후배라며 하지만 남자로서는 받이 줄 수 없다고 했다 선배는 가방 안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더니 나에게 만은 꼭 축하를 받고 싶다며 청첩장을 건네주는 게 아닌가, 참으로 맑았던 하늘이 선배가 전해 준 청첩장으로 인해 하늘에서 한바탕 소나기가 내릴 듯이 내 마음이 먹구름으로 변해 버렸다. 선배는 내가 군대를 가면서 대학 선배랑 사귀기 시작했고 7개월 만에 결혼 날을 잡고 이렇게 시간이 흘러왔으며 나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많이 망설였다고 했고 상처를 주는 게 너무 미안하고 싫다며 더 좋은 여자를 만나기를 바란다는 말 만 한 채 뒤돌아 가 버렸다 그렇게 선배에게 전하고 싶은 사랑은 끝나고 말았다. 다들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듯한 데 지금 나 만 이렇게
주인도 모르는 지하 단칸방에서 햇살과 숨바꼭질을 해야만 찾았다는 기쁨으로 햇살을 이불 삼아 누워서 지난 일들을 회상하니 마치 엊그제의 추억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