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도는 계약서
마음도 자연의 햇살도 초록을 선물하는 따스한 봄으로 늘 새해가 되면 주먹 쥐고 다짐한 듯 두 달에 한 번씩 등록하며, 매일 2시간씩 하는 운동을 3주째 가지 못했다. 경력직으로 이직 한 지 6년 전의 일이다. 퇴사 한 직원이 팀장님과의 서로 지지 않으려는 감정싸움 때문에 결국 대화 불화라는 용어로 단 칼에 "내일부터 안 나오겠습니다"라는 책임감 없는 말투로 퇴사를 해 버렸단다. 인수인계도 없이 그 해로부터 2년 전에 받아 놓은 숱한 업무를 미리 예고도 없이 다른 사무실에서 선 등기를 해 버리는 탓에 거래처 갑 금융권에서 우리 보고 뒤따라 근저당권 설정 등기가 들어가야 되는 게 아니냐고, 왜 먼저 알아보지 않았냐고, 어떻게 할 거냐고, 난리가 났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뒤통수 맞은 기분으로 황당하기까지 했다. 이제야 위 상사는 이런저런 상황으로 서류를 받아 놓고 챙기지 못해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나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갑자기 빨리하라는 성질 급한 사무장님의 지시하에 급하게 경력직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주말, 휴일은 어린아이들을 내 팽개치고 아내까지 불러 정말 눈물 콧물 닦을 새 없이 바쁘게 업무를 처리하기 했다. 처음에는 진도도 안 나가고 결과물도 없이 시간만 보내버리는 기분이 들었지만 하다 보면 끝이 보이고 손에 익숙해져서 더 빠르게 되겠지 하는 힘들면서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즐겁게 일을 했다. 빠른 퇴근을 위해 저녁 먹는 시간도 너무 아까워 배고픔을 달래 가며 밤 11시 12시까지 업무를 밀리지 않게 정말 열심히 일을 했지만 일찍 퇴근하는 다른 직원들에게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저 다정하게 인사만 하고는 무슨 약속이 있어 퇴근을 하려면 유독 나 한 데만 큰소리치며 이 업무를 두고 약속을 잡는 건 무슨 경우냐며 큰 소리를 치는 상사가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퇴근하는 걸음을 멈추고 다시 컴퓨터를 켜야 했고 약속을 취소하는 경우가 잦으면서 주위 분들에게 "살아는 있으니 당분간 잠시만 연락을 할 수 없다"라는 문구를 휴대폰 메인에 남겼다. 마음속으로는 이 더러운 직장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한 편으로는 너무 화가 나서 정확한 업무와 거래처에 대한 계약서와 협약서를 확실하게 해서 본대를 보여주고 말 거라는 분노의 생각이 들었다. 순간 이 업무가 끝날 때까지 퇴근이라는 단어는 생각 안 하기로 하고 새벽 6시에 눈 뜨자마자 출근해서는 업무에만 집중을 했다. 전 직원은 아마도 잦은 야근과 업무적인 스트레스로 갑자기 퇴사를 결정했는지 모르겠다. 그 업무가 고스란히 나에게 넘어왔고 함께 일했던 직원들은 도와주기는커녕 남의 일처럼 대하는 게 전 직원이 정말 힘들만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기가 생겼다. 앞 직원이 남겨 놓았던 계약서를 글씨체 하나 빼먹지 않고 시간 날 때마다 며칠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수정을 하고 또 수정을 하고 100%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99%의 만족감으로 계약서를 완성했다. 하루하루 업무는 아르바이트생이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 개인적인 사비로 퇴근길 택시비를 주긴 했지만 마음적으로 정신적으로 정말 힘들지 않았나 싶다. 나와는 초면인 거래처는 업무를 자꾸만 다른 사무실로 가고 있었고, 나에게 자꾸만 잔소리를 하는 상사 때문에 새롭게 작성한 계약서를 거래처 지점장님을 찾아가 제출하면서 검토 후 연락을 준다고 했다. 일단 서류를 보던 안 보던 제출했다는 1단계는 통과한 기분으로 조금은 괜찮아졌다. 거래처 은행에서 며칠 동안 아무런 연락이 없길래 빵이랑 커피 등 간식을 사 들고 찾아갔지만 회피하기 일쑤였다. 자존심이 많이 스크래치 나며 상처투성이였으나 나까지 여기서 포기하고 그만둔다면 아마도 사무실은 그야말로 폐업을 해야 하기에 더 오기가 생기면서 뒷날 또 뒷날 귀찮게 찾아갔다. 결국 지점장님도 나의 집요함에 지친 듯 구석에 처박아 놓은 계약서를 살피더니 그동안 회피한 시간들은 미안하고 다시 한번 정중히 읽고 검토해서 내일 연락 주신다는 약속을 했다. 뒷날 9시에 지점장님께서는 은행에 다시 들어오라고 했고 나는 편한 복장이 아닌 다시 집으로 가서 정장에 넥타이까지 매고 은행으로 갔다. 구두상으로 10만이라는 수수료를 15만 원으로 올리는데 성공을 했고 계약서 또한 몇 개의 오타가 발견되었지만 고객님과 책임자들의 마음에 와닿는다며 계약서에 만족함을 보였다. 2주간의 지점장과의 미팅 속에 완벽한 계약서는 상호 간의 서명이 작성되고 밀린 업무도 한 달 보름 만에 거의 마무리가 되었다. 아르바이트생에게 수고비를 20만 원 더 지불하고 아내에게는 아르바이트 비용과 한 달 설거지 이용권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거래처와의 관계는 좋은 인연으로 계속 이어가고 있으며 며칠 전 타 금융권 거래처에 인사를 하러 갔다. 타 금융권 거래처라 샘플 계약서를 보여 달라고 했더니 순간 놀랬다. 그 계약서는 6년 전 내가 만들었던 계약서 안에 갑을 그리고 중요한 상호만 바꿨을 뿐 글씨체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 같은 업종에 다니는 친구에게도 본인의 거래처 계약서를 보여 달라고 했는데 그 계약서마저 갑을 상호만 찐한 문구 글로 바꿔진 계약서였다. 퇴사까지 생각하며 며칠을 고민하고 지점장님을 찾아다니며 완성했던 그 계약서가 지금 어느 금융권에서도 돌고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쓴소리 들어가며 자존심도 조각난 유리처럼 산산이 깨지면서 만들었던 계약서가 매일 어느 지점의 거래처마다 심심풀이 땅콩으로 돌고 돌아다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아는 동생이 부장으로 있는 제2금융 어서도 내가 만들어 준 계약서가 비치되어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내가 만든 계약서가 혹시나 다른 지역에서도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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