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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Nov 16. 2024

바람 부는 날이면 난 널 떠올리겠지

Nazare, Portugal

바람이 분다. 몹시 분다.

     

오전 10시경, 아침이 되어 우린 바닷가로 나왔다.

유명한 유적이나 고풍스러운 저택은 없지만 독특한 낚싯배들은 있다더니 오늘은 매서운 강풍 때문인지 그 모습도 통 여의치 않아 보인다.

한적하고 소박한 어촌의 모습을 기대했지만 그저 광활한 바다만이 눈앞에 펼쳐져있을 뿐이다.



아직은 굳게 문이 닫힌 인근 상점들, 수많은 갈매기 떼, 바람으로 이는 거대한 규모의 파도, 저 멀리 보이는 깎아지른 물가의 해안절벽, 

그리고 머리카락이 덮쳐 제대로 얼굴조차 가늠할 수 없는 우리 셋이 눈앞에 보이는 전부다.     



온 동네가 절벽을 따라 하강하는 구조여서 그런가.

동그랗게 파인 이곳에 바람결이 자꾸 더해지고 쌓이니 그 힘은 더 강력해지는 느낌이다.

그 세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서 있기 조차 버겁다. 폭격이라도 당한 듯 눈이 시리고 다리는 후들거린다.

휭휭 거리는 바람 탓에 온갖 티끌과 습도는 제 세상이라도 만난 듯 축축하고 부연 공기를 뿜어대니 덕분에 분위기는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어쩌면 “이게 뭐야! 날씨 왜 이래!”할 법도 한데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매혹적이다.


덕분에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마구 뛰어다녔다. 머리가 엉켜 자칫 ‘광녀’로 보일 법한 모습으로.

애꿎은 갈매기 떼에게 달려가 그들을 쫓다가 또 금세 여기저기로 뛰어다니다, 엄마의 카메라 뷰파인더 속으로 들어가 엄마와 함께 춤이라도 추듯 빙그르르 돌며 장난도 친다. 아빠는 또 그런 우리 둘을 저만치 서서 캠코더로 찍으신다. 이중 삼중 겹친 촬영으로 한껏 재미 들린 우리는 그렇게 한참 동안 신이 났다.



얼마나 지난 걸까. 꽤 오랜 시간 후 차를 끌고 절벽 위 전망대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조그마한 예배당이 있었고, 그 아래로 조금 비껴가니 절벽의 모서리지점이 있다.

마찰이 처음 시작되는 지점이라 그런가. 그곳의 바람은 더 억세고 격앙되어 있다.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내리다가도 그 세기에 압도되고 만 건지 다가갈 시도조차 하지 않고 뒷걸음치기도 한다.



그래도 다녀오는 사람이 있는 걸 보니 갈 수는 있나 본데 나조차도 쉽게 엄두가 나진 않는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이 어떤 분들이신가.

쉬이 포기할 당신들이 아니라는 건 익히 알았지만 한편으로 무슨 일이 생길까 염려되기도 한다.



“아빠!!! 엄마!!! 조심해요!!! 거기 위험해 보이는 데 괜찮을까?” 

소리치는 나를 뒤로하고 점퍼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고 용단을 내린 듯 저벅저벅 나서신다.



잠시 후 저편에서 “괜찮아! 너도 거기만 조심해서 오면 돼! 그러니 걸어와 봐!! 올 수 있어!!”하는 목소리가 들려 나는 몸을 흡사 폴더휴대폰처럼 거의 접다시피 하고, 앉은 모양으로 절벽에 붙은 채 한 걸음씩 옮기기 시작했다. 


정말 아주 극한 지점, 그 포인트만 피하고 나니 그래도 고통은 금세 수그러들었고 꽤 견딜만했다.     

이윽고 나까지 도착해 셋이 함께 바라보는 대서양. 참으로 드넓고 참으로 드세다.



온통 하얗게 인 바다를 보고 있자니 이것 역시 장관이다. 

눈앞에 펼쳐진 건 오로지 바다. 아니 바다보다는 파도. 

바다와 바람, 바위가 만나 만드는 하얀 거품, 그 파도가 만들어내는 굉음.



단지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이 엄청난 공간.




+

이곳은 단순해서 좋다. 무엇이든 광대해서 좋다. 

덩달아 뚫리는 기분 드니 좋다. 나아가는 기분이 드니 것도 좋다.  


너의 급한 성미와 성난 거품이 오히려 가감 없어 보여서 좋다.

여과 없이 모조리 토해내는 네가 오히려 진실되어 보여 좋다.


너를 만나 좋다.     

잔잔하고 인자하지는 않아도 뚜렷했던 얼굴, 그거 하나면 된다. 뭐든 한 가지만 확실하면 된다. 

.

.

그거 하나면 족하다.






<진실한 얼굴>에 대하여.

포르투갈, 나자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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