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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서린 Nov 28. 2024

8화 임신과 출산


결혼을 하면 아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선택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었다. 난 아기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많아서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만약에 임신 기간 동안의 불편함이나 출산의 고통이나 육아의 엄청난 실체를 알았더라면 임신을 생각했을까? 그건 모르겠다.


출산과 육아가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정말 몰랐기에 가능했던 임신, 그리고 임신테스트기에 희미하게 뜬 두 줄. 신기했다. 내 뱃속에 생명이 있다는 것이......



남편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은 좀 서운했다. 여느 드라마에서 처럼 남편이 호들갑 떨며 감격하는 모습을 보일 거라 생각했는데, 금방 아이가 생긴 게 좋지 않은 건가 싶었다. 산부인과를 다녀와서 남편은 나에게 꽃다발을 주며 축하한다고 그랬다. 자기도 아빠가 되는 건데. 고맙다거나 다른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일처럼 축하한다니......  그 후에 이런 마음을 말하니 좋은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고 했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 생각해 보니 갑자기 아빠가 된다는 것이, 책임질 가족이 생긴다는 것이 남편에게도 가볍게 느껴질 일은 아니었을 거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마냥 하하 호호 좋아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임신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되어 그 감동이 덜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내 예상과는 다른 반응을 받으며 임신 기간이 시작됐다. 처음 한 일주일은 남편이 아침을 챙겨주었다. 그 후에는 주말에 내가 출근을 해도 남편은 혼자 늦잠을 잤다. 당연히 아침도 둘다 집에서 먹지 못하고 나갔다. 늘 내가 먹을 걸 싸서 회사에 들고 갔다. 나는 안 먹으면 속이 오히려 안 좋아져서 꼭 뭔가를 먹어야 했다.

지하철에서 빈 속에 속이 메슥거려 토가 나오려는 걸 꾸역꾸역 참으며 급한 대로 편의점에서 레몬맛 비타민을 사 먹기도 했다. 돌아오는 퇴근길에는 1시간을 지하철에서 서와야했다. 노약좌석이 비어있어 앉으면 할아버지가 젊은 사람이 앉아있다고 욕을 하기도 했다. 임산부라고 얘길 해도 똑같았다.



주말에 내가 회사에 가게 됐을 때는 남편이 차를 가지고 와줄 만도 한데 집에서 그저 쉬고 있었다. 집안일도 안 하고 말이다. 임신 중반쯤 됐을 때 내가 서운함을 얘기하니 그때서야 와주었다.

배가 불러오는데 회사 일까지 바쁘고 상사까지 임산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사람이어서 점점 더 힘들어졌다. 결국 회사를 나왔다. 내가 하고 있었던 일은 주말 회의는 당연하고, 마무리 과정에서는 집에도 못 가고 새벽까지 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그러다 아기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그만두는 것을 남편은 탐탁지 않아 했다. 임신 중이 아니었다면 나도 일은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한 번 회사에서 나오면 돌아가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애사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회사이기도 했고, 그때는 아이를 잘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회사를 나왔다.


여유가 생겼다.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은 아쉬웠지만 골치 아픈 일에서 벗어나니 홀가분하긴 했다.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는 없었다.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마트에서 해주는 이유식, 죽 만들기 강좌도 듣고, 임산부 요가도 등록했다.



요가를 하면서 몸도 좋아졌고, 감기 한 번 하지 않고 임신 기간을 잘 보내게 되었다. 요가에서 만난 마음 맞는 임산부들과 얘기하는 것도 좋았다. 입맛이 좋아져서 음식이 무한정 들어갔다. 내 인생에 렇게 많이 먹었던 적이 없었고, 렇게 몸무게가 늘어나 본 적도 없었다. 얼굴뿐만 아니라 몸에도 살이 쪄서 더 이상 마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처음에 내 몸무게를 보시고 말랐다고 잘 먹으라 하셨을 때, 먹어도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이라고 망언을 한 것이 후회됐다. 마지막에는 너무 많이 먹어서 애가 커지면 낳기 힘드니 먹는 걸 좀 조절하라는 말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입맛이 좋은 것은 행복했지만 체중계에 올라가 늘어난 몸무게를 보는 것은 좀 겁이 났다. 처음으로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임신 기간 동안 16~17kg 정도 몸무게가 늘었고, 예정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아기가 내려올 생각을 안 했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뛰기도 했는데 배가 하나도 안 아팠다. 남들은 조산끼가 있어서 누워만 있기도 한다는데 나는 애가 안 내려와서 내려오게 하려고 돌아다녀야 했다.


그러다 예정일이 하루 지난 새벽, 갑자기 배가 아팠다. 신호가 온 것이다. 진통 간격을 재며 견뎠다. 몇 시간 진통이 계속되다가 아침이 되니 갑자기 진통이 멈추었다. 아프지 않았다. 그래도 이상해서 출산 가방을 들고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께서 자궁문이 꽤 열려있다고 했다. 유도제를 맞았다. 그때부터 배가 점점 참기 힘든 수준으로 아파왔다. 진통이 최고조일 때 내진을 하니 그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무자비하게 내진하는 간호사를 때려 눕히고 싶을 만큼 싫었다. 미칠 것 같은 진통이 4시간 정도 계속됐다. 무통 주사를 맞고 부작용을 겪었다는 친구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무통 주사를 안 맞았는데 맞을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의사가 와서 보더니 자궁문은 다 열렸는데 애가 내려오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힘들어 보이고 수술을 하자고 했다.



자연분만하려고 임산부 요가도 한 건데, 자연분만 특강수업까지 받았건만 출산 직전의 고통을 겪으니 자연분만이고 뭐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진통 중에 응급 수술을 했다. 수술해야 하니 힘을 주지 마라는데 절로 힘이 들어갔다. 전신 마취를 했다. 조금만 더 견뎠으면 자연분만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면서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때는 혼자 누워있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보고 싶었는데 그 모습을 못 본 것이 나를 힘들게 했다. 수술을 해서 바로 그날은 아기를 안아 볼 수가 없었다. 우리 아기가 잘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모유수유를 해야 하는데 우리 아기만 엄마 없이 신생아실에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눈이 떠지고 정신이 들면서 이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간호사가 깨어난 나를 발견했고 나는 복도를 지나 입원실로 옮겨졌다. 병실로 가는 길에 시어머니께서 나를 보고 괜찮냐는 말을 하셨던 것 같다. 엄마도 와 계셨던 것 같다. 그때 주위 상황은 정확히 잘 기억이 나지 않고, 그저 태어난 아기를 보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다.


침대에서 일어서려는데 배에 쌀 한 가마니를 얹은 듯한 무거운 느낌이 있었다.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진통도 다 겪고 수술 후 고통까지 겪어야 했다. 움직일 때마다 배가 미칠 듯이 아파서 괴로웠다. 밤에는 가위에 계속 눌려 5분 간격으로 깼다.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출산 후 힘든 첫날밤을 보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모유수유를 하러 신생아실에 처음 들어갔던 날, 눈을 감은 귀여운 우리 아기를 드디어 품에 안아보았다. 정말 예뻤다. 젖을 물리는데 본능적으로 입을 오물거리는 아기가 신기했다.


'이제 내가 이 작은 생명을 지켜줘야 하는 존재가 되었구나.'


아기를 낳고 만나는 과정이 힘들었던 만큼 애틋함이 커졌다. 이 아이를 정말 사랑으로 예쁘게 지켜주며 키워야지 생각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인 육아의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로......






<9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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