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서린 Nov 29. 2024

9화 육아의 세계


산후조리원에 있는 2주 동안은 편히 쉴 수 있을 줄 알았다. 실상은 편히 쉴 수 있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짧게는 2시간 길게는 4시간 간격으로 수유실에 가 모유수유를 해야 했고, 새벽 수유를 안 한다 해도 젖몸살 때문에 자다 말고 일어나 유축을 해야 했다. 제왕절개 수술로 움직일 때마다 배에 고통까지 더해지니 조리원에서의 2주는 산후조리하려고 쉬는 시간이 아니라 고통을 견뎌내는 시간이었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맞았다.


한 번 울면 조리원이 떠나가라 울어대는 우리 아가 때문에 다 같이 수유하는 수유실에서 달래 지지 않는 아기를 수유하는 일은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차라리 집에 가고 싶었다. 초보 엄마는 의욕은 앞서지만 서툰 것이 많았고, 방에서 혼자 펑펑 울기도 많이 했다. 젖병에 길들여져서인지 모유수유를 거부하는 아기 때문에 나는 계속 유축을 해야 했고, 유축기를 쓰다가도 손도 같이 쓰다 보니 손가락이 계속 안 좋아졌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모유수유를 거부하는 아기와 나 사이에 신경전은 계속됐다. 나는 아들에게 백기를 들었고, 모유를 먹이고 싶은 마음은 접을 수 없어 그냥 유축해서 젖병에 담아 먹이기로 했다. 3~4시간마다 유축을 해야 했고, 그래서 어디 멀리 나갈 수도 없었다. 유축을 하지 않으면 가슴이 돌덩이처럼 굳어져서 아팠기 때문이다. 무거운 배가 불편했던 임신 말기에는 애만 낳으면 홀가분할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출산 후부터가 진정한 고행의 시작이었다. 놀아주기, 수유하기, 트림시키기, 기저귀 갈아주기, 목욕시키기, 안아서 재우기, 빨래하기, 젖병 세척과 소독, 집 청소하기, 식사 준비하기 등 해야 할 일이 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주먹이 쥐어지지 않았다. 손가락이 굽혀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병원에서 한 달 정도 물리치료를 받았다. 잘 낫지 않았다. 한의원도 찾아가 보았지만 잘 낫지 않았다. 그 후 몇 달의 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손가락도 괜찮아져 갔지만 그때 이후로 아직까지도 손가락이 좋지는 않다. 주먹을 쥘 때 삐그덕 삐그덕하는 느낌이 있다. 이래서 산후조리가 중요하다고 하나보다.



손가락도 나빠지고, 유축 때문에 어디를 편히 다닐 수도 없어 4~5개월 뒤 엄마가 만들어 준 젖을 말려준다는 엿질금 물을 마시고 유축도 참아가며 젖병으로 먹이는 모유수유를 끝냈다. 그쯤 이유식을 시작했는데 이유식을 만드는 것 또한 굉장한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아이가 커갈수록 들어가는 재료도 많아지고 다져야 하는 재료도 많아졌다. 그때는 넉넉지 못한 생활이기도 했고, 사 먹이는 것보다는 해 먹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밥을 먹기 전까지 먹였던 모든 이유식을 직접 장봐서 집에서 만들어 먹였다. 그러다 보니 이유식 만드는 공장에 공장장이 된 기분이었다. 돌이 가까워 올 때쯤 삼시 세끼 이유식을 먹을 때는 굉장했다. 돌아서면 죽을 만들어 내야 했다. 그래도 이유식을 끝냈을 때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이다음에 크면 '집에서 이유식을  만들어 먹였다고 꼭 말해줘야지.'하면서 말이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과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늘 있었다. 그런데 육아를 하면서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나 싶을 때가 종종 생겼다. 돌도 안된 어린 아기한테 화가 나고 안 달래지는 아가를 보며 나도 모르게 소리를 치게 되었다. 나의 밑바닥을 보는 것 같았다. 혼자 돌아서서 반성하고 그러지 말아야지 하다가 또 같은 상황이 되면 참고 참다 화를 폭발하고 있는 나였다.



 늘 잠이 부족해서 피곤했다. 주말에는 나도 늦잠도 자고 싶고 육아에서 벗어나 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에 다니는 남편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였고, 잠을 이기지 못하는 남편은 주말에 일찍 일어나는 법이 없었다. 아기를 보다가 힘들어서 일어나라고 안 좋은 목소리로 깨우면 돌아오는 건 짜증 섞인 소리뿐이었다.



뭐라도 부탁하면 남편은 화내거나 짜증을 냈다. 육아와 집안일은 집에 있는 나만의 몫이었고, 그건 주말에도 변함이 없었다. 나에게는 주말이 없었다. 몸이 아파도 마찬가지였다. 육아와 집안일도 회사일 못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남편은 주말에도 내가 그 모든 걸 다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돌잔치에서 갑자기 손님들에게 인사말을 할 때, 나의 노고를 얘기하며 울먹였다. 기가 차서 나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누가보면 아내를 엄청 위해 주는 줄 알텐데 연기를 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힘든 걸 알았다면 그렇게 행동할 수 없었을텐데...



출산 후 남편은 나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만 잰틀하고 자상한 사람이었다.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 그 모습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변해버릴 줄은 몰랐다. 하루 종일 육아에 집안일에 지쳐있는 아내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한테 전과 다르다고 기분 나빠하는, 본인 생각 밖에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늘 가슴에 돌덩이를 얹고 사는 느낌이었다. 



어느 주말 오전, 계속 자는 남편에게 화가나서 일어나라고 깨웠다. 그러니 남편은 화를 내며


"늦잠 자고 싶으면 너도 나가서 돈 벌어와. 그럼 너도 여기서 누워 쉴 수 있어."


라는 말을 내뱉었다. 이 말은 아마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 말로 시작해서 이혼 얘기까지 나왔다. 시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시부모님이 오셔서 둘 사이를 중재해 주셨다. 하지만 남편은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냥 얼렁뚱땅 넘어가버렸다. 그 후로도 계속 그 말이 마음 속에 남아있어 남편을 보면 늘 증오의 마음이 함께 있었다.



사랑이라는 마음이 불씨라면 꺼지기 직전에 위태로운, 어쩌면 뭘해도 다시 살리기 힘든 영영 꺼져버렸을지 모를 불씨 같았다. 한 번씩 그 말이 불현듯 떠오르는 날에는 마음이 가라앉아서 주고받는 핸드폰 메시지에 평소답지 않게 무미건조하게 답장을 하게 됐다.



한 번은 그런 나에게 무슨 일 있냐고 남편이 물었다. 나는 그날 그 말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는데 당신은 한 번도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아서 그 말이 생각날 때마다 미워하는 마음만 커져갔다고 얘기했다. 평소처럼 바로 화를 낼 줄 알았던 남편이 갑자기 사과를 했다.

그때는 철이 없었다면서 미안하다고 말이다.

풀리지 않고 용서 못할 것 같은 마음이 그 사과로 인해 전보다 조금은 나아져 갔다.


그 후로도 우리는 비슷한 이유로 자주 싸웠다. 지겨우리만큼 많은 다툼이 있었다. 아이가 있으면 둘이었을 때보다 해야 할 일이 열 배, 아니 백 배는 늘어난다. 힘든 일이 많았고, 다툴 일도 많아졌다. 헤어지고 싶은 생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견뎌냈다. 정말이지 긴 인고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아이도 커갔다.



아이를 키우며 부부로 살다보니 연애할 때는 알 수 없었던 진짜 서로의 성격을 조금 더 알게 되었고, 아이 때문에 참고 넘어가게 되는 일도 있었고,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슬며시 평화의 시간이 찾아왔다.



예전만큼 다투지 않으려 애쓰고 조용히 넘어가려고 남편도 나도 노력한다. 그리고 돌아보니 포기하지 않고 고난과 역경을 견디며 여기까지 온 것이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그때는 내 인생에 평화가 다시는 안 올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는 진짜 사랑이라는 게 뭔지 알게 되었다. 그냥 이성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 진짜 한 사람을 어떠한 조건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자식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핏덩이 아기를 독립적인 한 사람으로 보살피고 키워가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누구에게도 느낄 수 없는 자식에게만 느낄 수 있는 초우주적인 감정이 있다. 아이가 없었다면 몰랐을 세상도 있다.



부모가 되어서야 진정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라고 하기에 아직 어린 생각투성이인 나이지만 이전에 나보다 훨씬 넓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이가 커도 여전히 육아는 힘들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아들에게 진심으로 얘기해 줄 수 있다.



'엄마가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이 너를 낳은 일이다.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10화에서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