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교육열이 굉장한 나라이다. 대한민국 엄마들의 교육열을 에너지로 바꾸어 쓸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에너지 걱정 없이 평생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건 태어난 순간부터 고3 수능 시험을 치는 날까지,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을 공부라는 늪에 빠져 지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부분은 그 과정이 그리 달갑지 않다. 그건 부모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아이를 교육시킨다는 건 그 교육열의 중심으로 들어온 것과 같았다.
유아 시절은 그저 '잘 놀고, 잘 먹고, 잘 싸고'가 중요했다. 공부라는 건 사실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입시 그리고 내 일을 찾아서 경제 활동을 할 때까지 아주 긴 싸움이기에 처음부터 애를 잡아가며 이것저것 시키기가 싫었다. 어릴 때부터 돈을 들여 뭔가를 시키는 사람들도 봤지만 그리 개의치 않았다.
아이가 자라서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는 코로나 시기였기 때문에 학원을 보내는 게 힘들었다. 유치원을 다니며 집에서 한글을 조금씩 깨치기 시작하는 정도였다. 돌 무렵부터 자기 전에 매일 책 2~3권 정도를 읽어줬기 때문인지 아들은 책을 무척 좋아했다. 그 덕에 한글을 깨치고 읽는 것도 수월했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지 않았던 나는 학교에서 국어 시험이 늘 힘들었다. 국어 시간은 좋았지만 시험에서 처음 보는 지문을 읽는 것은 의미를 모른 채 그냥 문자만 읽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속독이 안되고 의미 파악이 빨리 안 되니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졸업 후 교육계 출판사에서 일을 했다. 문학 쪽 출판사는 아니었지만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항상 원고나 편집본을 읽었다.
책을 만들면서 새로운 뭔가를 알아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어릴 때 내가 책을 많이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가 아이를 낳으면 꼭 책을 많이 읽어주리라 다짐했다.
그런 나의 바람과 아이의 기질이 잘 맞아떨어졌는지 아들은 책을 좋아했다. 지금도 집에 오면 새로 빌려 둔 책을 자연스레 집어 들고 본다. 아이가 스스로 책을 본다는 건 참 기특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입학 전인 일곱 살이 되니 나도 어쩔 수 없이 약간의 조급함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책 읽는 것만으로는 안될 것만 같았다. 수학, 영어는 어찌해야 하나 싶었다. 학창 시절에 나는 수학을꽤 잘했다. 그래서 초등 때는 엄청난 사교육이 없어도연산이나 그때그때 배워야 하는 것만 잘 배워두면 고등 때 미분, 적분이 어렵기는 해도 다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영어는 내가 못했었던 과목이라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내가 영어로 유창하게 대화를 해줄 수가 없으니 더 답답했다.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처럼 영어를 배우게 하려면 영어로 얘기해 주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았지만 나는 그게 안 됐다. 영어 만화 영상을 틀어주거나 쉬운 영어 원서책을 읽어주었지만 사실 영어로 말을 안 하니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싶었다.유치원에서 영어 수업이 있다 해도 영어 수업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 아이였기에 영어에 그리 흥미가 없구나 싶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아이 주위에는 영어 어학원, 주산 학원, 공부방, 한자 학원 같은 공부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도 꽤 많았다. 우리 아이는 그때까지 예체능 학원만 다녔다. 그런데 1학년 여름방학 전, 영어로 아들에게 'What's your name?'이라고 물었더니 질문에 맞지 않는 이상한 대답을 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 문장이한두 번 책에 나왔을 수는 있지만 평소에 영어로 받아보지 못한 질문일텐데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나는 유치원에서 3년 간 일주일에 몇 번씩 영어 시간이 있었으니 이 정도는 알지 않을까 생각했다. 당시 나에게 살짝 충격이었고, 그냥 집에서 말 그대로 귀에 들어와서 귀로 나가버리는 영어 흘려듣기만 해서는 안 되겠구나 싶었다.동네 영어학원을 찾아보았다. 책을 좋아하니 영어 도서관에 가면 숙제 부담도 없고 괜찮지 않을까 해서 영어 도서관에 보내게 되었다. 결국 1학년 때 영어학원에 보내게 된 것이다.
학원비는 점점 늘어갔다. 아이가 유치원생이었을 때, 초등학생 아들을 둔 동네 학부모에게 아이 하나 학원 보내는 데 한 달에 80만 원이 든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때 심하게 놀랐었는데, 점점 학원비가 늘어가는 것이 커갈수록 당연히 그렇게 되겠구나 싶어졌다. 놀랄 금액이 아니었다. 대치동에 살면 학원 하나 가격이 말도 안 되게 비싸다던데 서울에는 부자들이 그리 많은 건가? 애 하나 키우는 데 무슨 돈이 이리 많이 드는 건지...
공부 학원이건 예체능 학원이건 서울에서 돈이 있음에도 학원을 보내지 않는 부모는 굉장한 신념과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것저것 일주일에 10개가량 되는 걸 시키는 엄마는 봤어도 아무것도 안 시키고 '지금은 놀 때니까 공부하지 말고 실컷 놀아라'라고 하는 부모는 보지 못했다. 아직 어리니까 공부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식이 아닐 때만 가능한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정작 자기 자식은 주말까지 학원을 보내고 있다. 자식에게 그렇게 말해주는 건 정말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점점 더 고된 과정을 겪고 있는 것 같은 우리나라 아이들이 안타깝다.
아이가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모들의 바람이다. 사실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아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일찍 찾아 그 일을 하며 평생 돈 걱정 없이 살았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가 대학 타이틀에그리 목메는 것은 아직도 학벌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회 풍토와 더불어 그 학벌로 돈 잘 버는일을 했으면 해서 그런 것 아닌가? 무시당하지 않고 돈 걱정 없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부모들은 그걸 바라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어떤 부모들은 아이를 혹사시키기도 한다. 아이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너를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정상적인 부모라면 그 무엇보다 자식이 건강하기를 바란다. 아이가 심하게 감기를 앓을 때마다 사람이 건강하지 않으면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한 번씩 이런 생각을 한다. 주위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누구의 이목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 살게 되면 이 말도 안 되는 경쟁 같은 굴레에서 벗어나 좀 자유롭게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서울이라는 도시는 참 좋은데, 여기서 아이를 키우는 건 어떤 면에서는 신경 쓸게 많아 힘들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