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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서린 Dec 03. 2024

11화 여행


서울에 살아서 좋은 점은 서울 안과 가까운 경기도에 아이와 함께 놀러 갈 만한 곳들이 많다는 것이다. 유아기 때는 주말에 놀러를 가게 되면 공원, 동물원, 아쿠아리움, 키즈카페, 유아들이 갈만한 박물관 같은 곳에 갔다. 5살이 넘으니 유모차 없이도 꽤 오래 잘 걸어 다녀서 민속촌, 서울 안팎에 있는 놀이공원들, 각종 박물관, 과학관, 어린이 뮤지컬, 공연, 미술관, 복합문화공간, 서울의 명소 같은 곳에 가도 즐기며 놀 수 있었다.



물론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곳은 놀이터나 키즈카페이지만 가까이 저런 시설들이 있어 다양한 볼거리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가보지 않았을 것 같은 각종 박물관이나 과학관에 갔을 때는 생각보다 흥미로운 것들이 많고 재밌어서 내가 어릴 때 이런 곳이 집 가까이에 있어서 자주 왔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리와 에그박사가 나오는 뮤지컬 공연에 가면 눈앞에서 그들을 보고 하이파이브도 할 수 있었다. 정말 내가 어릴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요즘 아이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경험하고 있었다.



이렇게 주말마다 다니는 나들이도 좋았지만 매일 생활하는 바운더리에서 벗어나 머리를 식힐 시간도 필요했다. 아이 위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생활들에 나도 지쳤기 때문이다.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집에서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일은 서울이 아무리 좋다 해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


아이가 자라고 코로나 시국도 익숙해질 때쯤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아이가 돌 지나자마자 제주도 여행을 간 적이 있었지만 그건 거의 극기훈련과 같았다. 유모차를 끌고 잠투정하는 아이를 데리고 타지를 다니는 일은 여행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5~6살 정도가 되었을 때 제주도를 다시 가니 스스로 꽤 오래 걷고 뛰고 해서 데리고 다니기가 수월해졌다. 식사 메뉴도 아이가 클수록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났다. 가끔 구경하고 싶은 소품샵 같은 곳이 있어도 구경하기 힘들었던 유아기 때와 달리, 어린이가 되니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잠시 구경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렇게 한 번씩 국내 여행을 다니다가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하기 전이었던 7살 겨울방학, 처음으로 남편과 나와 아이 이렇게 셋이서만 해외여행을 갔다. 다른 가족 없이 우리끼리 가는 첫 해외여행이었다.



우리의 첫 가족 해외여행지는 대만 타이베이였다. 가끔 텔레비전에 나왔던 대만 풍경을 보고 가보고 싶었는데, 타이베이는 대중교통이 서울처럼 잘 되어 있어 아이랑 가기에도 꽤 괜찮다는 후기를 봤다. 여행지가 정해지면 무서운 추진력으로 준비하는 나의 준비성으로 여행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무척 기대되고 설레었다.


아이를 데리고 해외여행을 가는 일은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음식도 그렇고 아이 체력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무리하게 일정을 짜기도 힘들었다. 모르는 곳에서 아이를 데리고 차 없이 대중교통만으로 잘 다닐 수 있을지 걱정도 됐다. 하지만 걱정보다는 여행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기대를 품고 간 대만 여행은 도착한 순간부터 행운이 함께 했다. 대만 정부에서 외국인 여행객에게 추첨으로 주는 여행 지원금에 당첨되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들 둘이나 말이다. 부푼 마음으로 공항을 나와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하던 길, 타이베이 골목골목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대만만이 가지고 있는 감성적인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첫 해외여행은 시작부터 끝까지 가는 곳마다 즐거웠다.



대만 음식은 다른 외국 여행지와 다르게 맛있는 것이 꽤 많았다. 야시장 음식들부터 해서 소시지와 100년 된 식당에서 먹은 볶음쌀국수, 흑당버블티 그리고 너무 맛있어서 놀랐던 누가크래커까지, 음식을 먹는 재미도 있었던 곳이어서 더 좋았다. 고수 맛이 나는 국물이 좀 입에 맞지 않았던 것만 빼면 유럽 음식들보다 훨씬 맛있는 대만 음식에 조금 놀랐다. 여행에서 3분의 1은 먹는 음식이 차지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맛있는 음식에 진심인데, 꽤 만족스러운 해외 음식이었다.



대만 여행 동안 매일 꽤 많은 거리를 걸었다. 힘들었을 텐데도 여행을 즐겨준 아들에게 고마웠다. 서울에서는 어디 가자고 하면 마지못해 가던 남편도 대만에서는 적극적으로 길을 찾고 음식점을 찾으며 여행을 즐기는 듯했다. 평소 자기 맘에 조금 안 맞으면 짜증을 내는 남편의 버릇도 이 여행에서는 없었다. 후에 말하기를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것도 고마웠다. 서울에서도 이 여행에서만큼 평화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만 대만 여행을 기점으로 남편과 나도 조금은 달라진 듯했다. 전보다 서로 다툴 일을 덜 만들고, 이해하기도 하면서 안정적이고 따뜻한 가정의 모습이 만들어져가고 있었다. 그것이 꼭 여행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여행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서로를 더 결속시켜 주고 변화시켜 주는 힘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셋이 자주 여행을 가려한다. 



타이베이 중정기념당 가는 길에서 보았던 골목길



<12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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