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케이팝과 우리나라 드라마, 영화들이 외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중심에 서울이라는 도시가 있다.
지방에 살았던 나에게 서울은 어릴 때부터 그저 꿈같은 곳이었다. TV에 나오는 거의 모든 장소가 서울이었고, 거기 나오는 연예인들이나 유명인들도 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었기에 서울에 사는 것은 로망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내가 그토록 꿈 같이 바라보았던 서울에 살고 있다. 서울 시민이 되어서 말이다. 처음부터 서울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들은 이런 내 마음을 백 프로 이해하기 힘들 거다. 내가 여기에 산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던 20대 후반, 처음 서울에 왔던 그때 그 감정은 어디서도 다시는 못 느껴 볼 감정 같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었지만 서울에 산다는 것만으로 내가 힘든 무엇인가를 이룬 것 같았다. 드라마 속에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어떻게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나는 어릴 적에 내성적인 아이였다. 친한 친구에게는 엉뚱하고 재밌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나와 친하지 않은 아이들 옆에서는 그저 조용하고 모범생 같은 아이 었기에 나의 그런 모습을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나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다. 어쩌다등떠밀려교단에 서서 노래를 부르게 되면 친구들과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분명히 해본 적은 없었지만 가끔씩 무대에 서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곤 했다. 그리고 사춘기 시절, 영화관에서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러브레터>를 보고 영화에 빠졌었다. 방학 때면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빌려 밤마다 혼자 영화를 보며 나도 저런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꿈꾸곤 했다.
고등학생이 되어 모의고사를 칠 때 본인이 원하는 지망 대학과 학과를 쓸 때가 있었다. 두 군데를 쓸 수 있었는데, 한 군데는 꼭 서울에 있는 학교에 연극영화과를 썼던 것 같다. 우리 가족들 중 아무도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학창 시절에 영화감독이나 배우 같은 일을 꿈꾸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서울에 가고 싶었다는 것을 말이다.
난 영화감독도 배우도 가수도 되지 못했다. 수능이 끝나고 연극영화과에 지원할 용기도 없었다. 서울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것은 그저 꿈일 뿐이었다. 수능을 망치기도 했지만 그저 내 마음에 확신과 용기가 부족했던 탓이다. 그렇게 점점 나와는 거리가 먼 곳이라고 느껴졌던 서울이다. 그런데 무엇이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인지 모 출판사에서 일하는 편집자가 되어 서울에서 책을 만들며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고 있다.
내 나이 스물세 살, 그 당시 블로그에 이런 글을 적었었다.
솔직히 말해서 변화가 조금은 두렵고,
솔직히 말해서 정해지지 않은 몇 달 후 혹은 몇 년 후에 내 모습에 자신이 없고,
솔직히 말해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내가 상상한 만큼 내가 생각해 온 만큼 그 모든 것들이 현실로 나타나기란 힘들다는 거 나도 잘 안다.
상상이 현실로 되는 일은 여태껏 없다시피 해왔으니까...
그런데 참 이상하다.
신이 있다면 나한테 지금 기회를 주는 건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내 모습이 자꾸 내 눈앞에 나타나 있고
상상해 왔었던 내 모습도 내 눈앞에 나타나 있으니
이젠 내가 하고픈 대로 시작하기만 하면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을 가지고 한번 시작해보라고.
스물세 살, 취업 걱정과 함께 졸업 전 유럽 여행을 계획하며 휴학한 후 학교 밖에서 여행비를 벌기 위해 일을 했었다.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했던 시절이었다. 한 번씩 이 글이 생각이 날 때가 있다. 상상해 왔던 내 모습이 현실이 되었던 것은 그때 내가 고민 없이 그냥 저질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일을 해보려고 여기저기 다니며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얘기가 없었던 곳에도 이력서를 넣었다. 그렇게 넣었던 이력서 때문에 연락을 받아 일할 수 있었고, 일하는 동안에는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성실히 일했다. 일을 하면서부터는 학교에서와 다르게 밝고 쾌활해졌고, 어느새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돼있었다.
나를 바꾸는 건 신이나 운명이 아니라 노력했던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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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것은 나에게 꿈같은 일이었다.
지금은 현실이 되어버린 서울에서의 삶이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서울의 풍경들을 보면 내가 이 멋진 도시에 살고 있다는 것이, 그 과정들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서울에 살고 있다는 것, 그건 아직 내가 다 이루지 못한 무언가를 꿈꿀 수 있고,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의미를 준다.
단편처럼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내가 모여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내가 꿈꾸는 것들이 이루어질지 어떨지 누구도 알 수 없다.그 과정이 힘들지도 모른다.하지만 가지 않은 길을 걸어보는 건 설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