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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서린 Dec 04. 2024

12화 서울에 살고 있다는 것


몇 년 전부터 케이팝과 우리나라 드라마, 영화들이 외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중심에 서울이라는 도시가 있다.

지방에 살았던 나에게 서울은 어릴 때부터 그저 꿈같은 곳이었다. TV에 나오는 거의 모든 장소가 서울이었고, 거기 나오는 연예인들이나 유명인들도 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었기에 서울에 사는 것은 로망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내가 그토록 꿈 같이 바라보았던 서울에 살고 있다. 서울 시민이 되어서 말이다. 처음부터 서울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들은 이런 내 마음을 백 프로 이해하기 힘들 거다. 내가 여기에 산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던 20대 후반, 처음 서울에 왔던 그때 그 감정은 어디서도 다시는 못 느껴 볼 감정 같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었지만 서울에 산다는 것만으로 내가 힘든 무엇인가를 이룬 것 같았다. 드라마 속에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어떻게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나는 어릴 적에 내성적인 아이였다. 친한 친구에게는 엉뚱하고 재밌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나와 친하지 않은 아이들 옆에서는 그저 조용하고 모범생 같은 아이 었기에 나의 그런 모습을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나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다. 어쩌다 등떠밀려 교단에 서 노래를 부르게 되면 친구들과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분명히 해본 적은 없었지만 가끔씩 무대에 서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곤 했다. 그리고 사춘기 시절, 영화관에서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러브레터>를 보고 영화에 빠졌었다. 방학 때면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빌려 밤마다 혼자 영화를 보며 나도 저런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꿈꾸곤 했다.



고등학생이 되어 모의고사를 칠 때 본인이 원하는 지망 대학과 학과를 쓸 때가 있었다. 두 군데를 쓸 수 있었는데, 한 군데는 꼭 서울에 있는 학교에 연극영화과를 썼던 것 같다. 우리 가족들 중 아무도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학창 시절에 영화감독이배우 같은 일을 꿈꾸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서울에 가고 싶었다는 것을 말이다.


영화감독도 배우도 가수도 되지 못했다. 수능이 끝나고 연극영화과에 지원할 용기도 없었다. 서울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것은 그저 꿈일 뿐이었다. 수능을 망치기도 했지만 그저 내 마음에 확신과 용기가 부족했던 탓이다. 그렇게 점점 나와는 거리가 먼 곳이라고 느껴졌던 서울이다. 그런데 무엇이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인지 모 출판사에서 일하는 편집자가 되어 서울에서 책을 만들며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고 있다.


내 나이 스물세 살, 그 당시 블로그에 이런 글을 적었었다.


솔직히 말해서 변화가 조금은 두렵고,

솔직히 말해서 정해지지 않은 몇 달 후 혹은 몇 년 후에 내 모습에 자신이 없고,

솔직히 말해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내가 상상한 만큼 내가 생각해 온 만큼 그 모든 것들이 현실로 나타나기란  힘들다는 거 나도 잘 안다.


상상이 현실로 되는 일은 여태껏 없다시피 해왔으니까...


그런데 참 이상하다.


신이 있다면 나한테 지금 기회를 주는 건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내 모습이 자꾸 내 눈앞에 나타나 있고

상상해 왔었던 내 모습도 내 눈앞에 나타나 있으니


이젠 내가 하고픈 대로 시작하기만 하면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을 가지고 한번 시작해보라고​.



스물세 살, 취업 걱정과 함께 졸업 전 유럽 여행을 계획하며 휴학한 후 학교 밖에서 여행비를 벌기 위해 일을 했었다.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했던 시절이었다. 한 번씩 이 글이 생각이 날 때가 있다. 상상해 왔던 내 모습이 현실이 되었던 것은 그때 내가 고민 없이 그냥 저질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일을 해보려고 여기저기 다니며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얘기가 없었던 곳에도 이력서를 넣었다. 그렇게 넣었던 이력서 때문에 연락을 받아 일할 수 있었고, 일하는 동안에는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성실히 일했다. 일을 하면서부터는 학교에서와 다르게 밝고 쾌활해졌고, 어느새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돼있었다.



나를 바꾸는 건 신이나 운명이 아니라 노력했던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

.

.




서울에 사는 것은 나에게 꿈같은 일이었다.


지금은 현실이 되어버린 서울에서의 삶이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서울의 풍경들을 보면 내가 이 멋진 도시에 살고 있다는 것이, 그 과정들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서울에 살고 있다는 것, 그건 아직 내가 다 이루지 못한 무언가를 꿈꿀 수 있고,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의미를 준다.



단편처럼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내가 모여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내가 꿈꾸는 것들이 이루어질지 어떨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 과정이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지 않은 길을 걸어보는 건 설레는 일이다.

그 과정을 즐겨 보려 하는 지금이다.





<나의 서울 상경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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