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서 보낸 하루

by 홍미

오랜만에 여유로운 주말을 맞이해 친구와 근교 나들이를 가던 중이었다.

화장한 날씨에 들뜬 마음으로 걷던 중 걸려온 전화, 할머니가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지?

집에서 맨날 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지 않는 이상은 전화를 하실 리가 없는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할머니? 무슨 일 있어?'

'잘 놀고 있니?.. 아니 할아버지가 갑자기 열이 너무 심하게 나시네'

'이번에 감기 걸리셔서 그런 거 아니야? 약은 드셨어?'

'약은 드셨는데.. 지금 주말이라 병원에 문도 안 열지?'

'할머니 심하면 응급실 바로 가자. 내가 지금 갈게 집으로'

'할아버지가 괜찮다고 호들갑이라고 하네.. 그냥 약 드셨으니 좀 주무신대'


최근에 감기로 기침과 약간의 미열이 나서, 약을 처방받으셨는데 더 심해진 건지 걱정이 됐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친구와의 대화는 귀에 들어오지 않고, 괜히 찝찝한 마음이 들어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도착하기 전, 할머니께 전화를 드려 지금 병원을 가야 하니 할아버지 옷을 챙겨주시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기운이 좀 없어 보이셨는데, 당장 아픈 곳은 없다고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어린아이를 달래듯, 그래도 가서 검사 한번 받아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겨우 설득해 응급실로 향했다.

내가 어릴 적 몇 번 경기로 몇 번 왔었던 응급실, 성인이 되어 누군가의 보호자로 방문하게 된 건 처음이었다.

응급실이란 말 그대로 주말에도 많은 이들이 북적북적 거려, 의사와 간호사 모두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기본 서류를 작성했고, 할아버지는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잠시 수액을 맞고 계셨다.

수액이 다 들어갔을 무렵, 의사가 육안으로 할아버지의 상태를 체크하고 나에게 증상을 물었다.

나는 오한이 들고 열이 좀 있으셔서 그렇지 평소에 큰 지병은 없으시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의사는 바쁜 듯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일단 기본적인 검사를 시행할 테니 보호자는 나가 있으라고 했다.

나는 마치 아이를 떼놓고 가듯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이따가 보자며 얇은 담요를 덮어 드리고 나왔다.


밖에서는 수많은 보호자들이 서 있었고, 대기실 한편에 할머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앉아계셨다.

나는 간단한 검사만 진행하고 가면 될 것 같다고 설명드렸고, 그렇게 하루 같은 한 시간을 기다렸다.

기다림에 지쳐 잠시 응급실 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아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비뇨의학과 xxx 교수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검사가 잘 되었나요?'

'네, 전체적인 검사 중 비뇨의학과에서의 이상소견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병원에서는 간단하게 검사 결과를 보호자에게 전화로 안내하는 듯했다.

그 뒤로도 세 통의 전화를 더 받았고, 오랜 시간 대기하셔서 피곤하실 할머니를 빨리 모시고 집에 가고 싶었다.

바람을 다 쐬고 다시 대기실로 들어가는 찰나에 한 통에 전화가 더 왔다.


'안녕하세요, 혈액종양내과 xxx 교수입니다.'

'네~ 따로 이상소견은 없으시죠?'

'... 일단 폐에 물이 좀 차 있으신데요.. 정밀 검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네? 물이요..? 정밀검사는 지금 하는 건가요?'

'네, 긴급하게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네네.'

...

'아직 정밀검사를 하지 않긴 했지만...'

'네네..?'

'.. 암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폐에 물이 많이 차있습니다.'

'암이요...? 무슨 말씀을 그렇게.. 아직 검사를 하지 않았잖아요..'

'폐렴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더 이상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복도에서, 난 미친 사람처럼 발악하며 오열을 해댔다.

암이라고? 우리 할아버지가? 왜? 아니 우리 할아버지가? 내가 잘못 들었겠지.

병원 관계자에게 이끌려 들어간 작은 공간엔,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나와있었다.


'xxx 보호자님 되시죠.. 아까 연락드렸던 교수입니다.'

'.. 아니잖아요. 왜 암이라고 하세요? 아직 정밀검사도 안 했고, 아니 아프지 않으셨다고요!!!!'

'왼쪽 폐에 물이 70% 이상 차있습니다.. 평소에 숨이 차거나 걸으시는 것도 버거우셨을 텐데요..

일단 정밀검사 바로 진행했고, 오늘은 퇴원 못하시니 내일 오전에 병원 연락을 받고 다시 오세요..'


평소에 숨이 차거나 걸으시는 것도 버거우셨다는 말에 심장에 총이라도 맞은 듯 가슴이 찢어졌다.

설마.. 그래서 할아버지가 최근에 내 마중도 안 나오시고, 걷다가도 자주 쉬어가곤 하셨던 걸까...

만약 이게 진짜 사실이라면, 나는 이 세상에서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할아버지라고 자랑하며 다녔던 내가 너무 쓸모짝 없이 느껴졌다.

그간 하루하루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내하고 사셨던 건지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나는 그동안 그것도 모르고 칭얼거리며 그의 마중을 바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아직 정밀검사 결과를 듣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들은 어떤 말도 믿지 않는다.

일단 병원에서 한 번도 입원을 해보신 적이 없는 할아버지가 놀라실까 병원 전화로 할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할아버지, 오늘 코로나 때문에 사람도 많고 해서 검사가 좀 오래 걸리나 봐!'

'그래..? 그럼 나 오늘 집에 못 가는 거야..?'

'응! 할아버지 병원에선 생애 첫 외박 아니야? 하하 내가 간호사분께 초코파이랑 요구르트 전달했어!

새벽에라도 배고프면 꼭 일어나서 먹고! 내가 내일 데리러 올게 할아버지~ 잘 자 내 꿈 꿔!'


오늘은 꼭 할아버지가 내 꿈을 꾸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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