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도 같았던 응급실에서의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아침 우리 가족은 새벽같이 병원으로 향했다.
생전 처음 병원에 입원하신 할아버지가 잠은 편히 주무셨을지, 불편한 건 없으셨는지 온갖 걱정뿐이었다.
아빠와 고모가 담당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간 사이, 불안해하시는 할머니를 모시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대기실엔 대부분 자녀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부모님을 부축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바빴다.
서류를 작성하는 사람들, 약을 챙기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의사와 간호사들.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저 멀리서 아빠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시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단숨에 달려가 할아버지를 안았는데, 이 많은 인파 속에 달려온 나를 보며 할아버지는 멋쩍게 웃으셨다.
어제 응급실에 가실 때 입으셨던 남색 반팔 셔츠와 할아버지의 희끗한 머리카락까지 모든 게 반가웠다.
누가 보면 몇 년 만에 보는 줄 알겠다는 할아버지의 장난 섞인 목소리를 듣자, 먹먹했던 마음이 순간 사르르 풀렸다.
단 하루 떠났을 뿐인데, 할아버지가 들어오자 그제야 집에서도 활기가 돋았다.
할아버지는 들어오시자마자 베란다로 향해 어제 물은 잘 줬는지 화분부터 확인하셨다.
그렇게 부재했던 하루 동안의 밀린 일들을 처리하시고, 편한 옷을 갈아입고 거실에 모두 둘러앉았다.
아직도 걱정이 가시지 않은 우리들과는 다르게, 할아버지는 하룻밤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시느라 바빴다.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셨다는 이야기, 같은 병실에 계셨던 아저씨와 금세 친해졌다는 이야기..
생각보다 밝은 할아버지의 모습이 다행스럽기도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나의 마음은 계속 불안해져만 갔다.
가족끼리의 식사가 끝난 후, 나와 할아버지는 방에 들어가 병원에서 받은 약들을 정리했다.
할아버지는 손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으시는지, 자꾸만 책상에 올리려는 약봉투를 떨어뜨리셨다.
딱히 멍이 들거나 외관상에 상처가 있는 건 아니었는데, 갑자기 어제부터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하셨다.
순간적으로 놀란 마음을 숨기고, 오랜만에 병원도 가시고 긴장해서 그런 거라며 손 마사지를 해드렸다.
할아버지 손에 이리저리 피어난 검은 꽃, 검버섯들이 괜스레 야속하게만 느껴져 코끝이 찡해왔다.
하루 만에 이렇게 급속도로 컨디션이 안 좋아진다는 게 너무 무서웠고, 어제 의사의 말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하지만 난 우리 할아버지가 평소에 엄청 건강하셨던 분인 걸 알기에, 부정적인 생각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세뇌를 하듯 머릿속을 부여잡고 있는 동안, 할아버지가 서랍장에서 무언가를 찾고 계셨다.
'할아버지 뭐 찾아?'
'아니 여기에 뒀던 게 그새 어디 갔지?'
'어떤 거 찾는데? 내가 사 올게!'
'그.. 시원하게 바르는 거 있잖아. 모기 물렸을 때'
'모기? 아 물파스 찾는 거야?'
'그래, 그거.'
'그거는 뭐 하려고?'
'손에 좀 바르면 나을까 싶어서.. 아무래도 그게 파스잖여'
모기에 물린 일처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시는 할아버지의 표정과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혹여나 눈물을 들키기라도 할까 싶어, 난 더욱 부산스럽게 서랍장을 뒤져가며 물파스를 찾았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물파스를 발라 드리자, 할아버지는 그제야 시원하다며 옅은 미소를 지으셨다.
물파스가 만병통치약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나는 더 꾹꾹 찍어가며 발라드렸다.
오늘따라 물파스의 향이 더 세고 시큰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