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오늘은 여느 때보다도 하늘이 맑고 화창했다.
날씨가 좋은 오늘이기에, 가슴 한편에 나도 모르게 희망이라는 새싹을 품어 버렸다.
응급실에 다녀온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고, 오늘은 교수님을 뵙고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이다.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는 최대로 두 명만 들어갈 수 있어서 고모와 아빠가 진료실로 들어가셨다.
한 시간 무렵이 지나 진료가 끝났고, 우린 누구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차에 올라탔다.
차라리 아무런 말도 없는 이 고요함이 평화로운 시간일 것만 같아서, 그렇게 적막과 함께 집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 병원에 가시느라 피곤하셨는지, 집에 오시자 마자 할아버지는 단잠에 드셨다.
불안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나를 단번에 알아차린 아빠가 밖으로 조용히 나를 혼자 불러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속에서 참고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직 어떤 말도 듣지 않았지만, 아빠의 표정과 지금 흐르는 이 공기마저 뭔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길면 1년이래, 짧으면 6개월.. 이미 너무 많이 퍼져있대..'
결국 할아버지 몸에서 발견된 건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암 덩어리였다.
아빠가 건넨 사진에서 붉은색이 암 덩어리라고 했고, 할아버지의 폐부터 허벅지까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평소에 숨이 많이 차셨던 것도, 새벽에도 소변을 꽤 자주 보러 다니셨던 것도 다 암으로 인한 증상이었다.
임플란트를 하시고 나서 식사를 잘 못하셔서 살이 빠지신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 또한 암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니 암은 우리에게 꽤 많은 힌트를 주었는데, 왜 빨리 알아차리지 못한 건지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당장 할아버지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게 너무 원망스럽고 억울해서, 정말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가기로 했던 제주도 여행, 증조할아버지 산소에 가서 같이 벌초하기로 했던 일,
노래를 좋아하는 할머니랑 같이 보러 가고 싶다던 가요무대, 나중에 손녀사위와 술 한잔 하겠다는 약속.
아직 할아버지와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그래서 더더욱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잠시 품었던 희망이 산산조각 난 오늘, 나는 처음으로 내일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