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가도 말 못 해요.

by 홍미

아직 폐암이라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에게, 더 큰 숙제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간단한 치료로 끝나리라 생각하고 계실 당사자 할아버지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알릴지에 대한 문제였다.

사실상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이런 중대한 결정은 처음이었다.


의사는 보통 이런 경우, 보호자들이 힘들더라도 환자에게 하루라도 빨리 알리는 경우가 낫다고 했다.

특히나 할아버지는 말기 암 환자로, 남은 생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머리로는 이해가 갔지만, 우리가 쉽게 결정을 못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스무 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쌀과 동전 몇 푼 만 가지고 서울로 상경하셨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것으로,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엔 턱 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어려운 형편에 학교 근처엔 가보지도 못하던 시절, 할아버지에겐 온전한 몸이 유일한 무기였다.


라면공장, 염색공장 그리고 과일 장사부터 그저 몸이 버티는 데까진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일을 하셨다.

코를 찌르는 듯한 염색약에 두통을 달고 사셨고, 허리도 제대로 못 펴고 일한 공장에서 얻은 건 대수술이었다.

허리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한 이후에도,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일을 나가셨던 분이었다.


애지중지 키워 놓은 자식들이 독립을 했지만, 생활비나 용돈으로 드리는 돈도 한사코 받지 않으셨다.

할아버지가 생각하신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은, 자식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손 벌리지 않는 것이었나 보다.

삭막한 세상에 아등바등 사는 자식들을 보며, 할아버지의 힘들었던 젊은 시절이 떠올라서였을까.


그렇게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것이 그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본인이 큰 병에 걸린 걸 알게 되었을 때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벌써 선하게 그려졌다.

앞으로의 치료는 물론이고, 너무 빠르게 모든 걸 단념하시고도 남을 분이셨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할아버지를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기적이라 할지 몰라도, 나는 할아버지와의 이별을 단 하루라도 늦추고 싶었다.

그렇게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한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할아버지의 병세는 빠르게 악화되었다.


거동이 불편하신 걸 넘어서, 구토와 열을 동반하며 점점 통증의 강도가 심해졌다.

결단을 내려야 하는 걸 알지만, 아빠와 고모 그리고 나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입에 담기도 어려운 말을 어떻게 직접 할아버지에게 전달할지 감히 상상도 가지 않았다.


누군가 내게 이제 살아가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먼저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며, 후회를 곱씹고 있을 것이다.

'왜 더 행복하게 살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았을까?'

'이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지?'

그렇게 수백 번의 질문을 되뇌던 끝에,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아침 식사를 마치실 무렵, 가족들이 하나 둘 거실에 모여 앉았다.

막상 말씀을 드리기로 했지만, 아빠와 고모는 차마 말이 꺼내지지 않으신 듯했다.

모두가 적막 속에 앉아 있기를 한 시간, 소파 끝에 앉아 계신 고모부가 할아버지에게 향했다.


"아버님, 지금 치료받으시는 거요.. 사실 많이 아프신 거래요 폐가.."

할아버지는 흐릿한 눈으로 고모부를 빤히 쳐다보셨다.


"암이래요.. 암.. 시간이 길지 않다니깐 아버님, 마음 좀 편히 가지셔요.."

고모부의 입에서 암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차마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의 얼굴을 눈 뜨고 볼 자신이 없었다.


세상에서 내가 할아버지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라고 떵떵거리던 손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키워주신 은혜는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손녀는.

그렇게 오늘부로 평생 스스로 용서하지 못할 죄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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