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 조상과 함께 했을 은행나무
가을 색깔은 아름답다. 온통 울긋불긋한 색상들이 시야에 펼쳐진다. 머리 위에도, 발아래로도 펼쳐지는 아름다움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지간한 일들은 가을이 주는 향기에 묻혀버린다. 따뜻한 차 한 잔이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따스한 햇살이 마지막 가을을 보내려 긴 그림자를 그린다. 바닥에 예쁜 그림을 그리며 온갖 낙엽들이 모여들더니 바람 난 망아지 마냥 뒹굴며 어디론가 떠나버린다.
떠나는 이들을 배웅해 주는 이는 다시 돌아올 먼 훗날을 기약하며 맘을 굳게 먹을 것이다. 이별이 얼마나 아픈 줄 알기에 꾹꾹 눌러 가슴에 안고 떠나가는 분신들을 배웅한다. 애틋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어미나무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철없는 아이들은 부모 곁을 떠나 자유를 찾은 듯 훨훨 떠나간다. 부모 품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알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 없을 것이다. 발에 밟혀 깨지고, 치이고, 부서지기를 수없이 하면서 이내 밀알로 돌아갈 것이다.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어가며 잎을 다 버리는 나무들의 현명함을 배워야겠다. 비워야 채워진다는 사실을 나무들을 통하여 배워나간다. 내일의 생존을 위하여 오늘의 고통을 참고 비워내는 나무들이야 말로 현명하기 그지없다. 더 많이 가지고, 더 지키려고 애쓰는 우리의 삶보다 적게 가지고 그것도 지킬 필요도 없이 다 내려놓는 낙엽을 보며 내 삶의 조급한 욕심의 량을 줄여보려 한다. 노란 부채 같은 모습의 은행잎이 바닥에 수북이 쌓이면 세상은 다시금 풍성한 아름다음과 그리움이 깊어가는 가을을 더욱 빛내줄 것이다. 그러면 다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편지를 써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취해 갈 것이다.
가을에 가장 많은 색은 노란색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은행나무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다들 거대한 나무로 자라 가로수로도, 공원 한가운데에서도, 문묘 앞에도 위풍당당하게 서있다. 바닥에 다소곳이 누워있는 은행나무 잎은 자신들의 조상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알고 있을까? 그 긴 세월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모든 생물 중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로 지금도 남아있음을 말이다. 모든 생명이 멸종의 시기를 거쳐도 당당하게 자신의 종족을 유지해 온 놀라운 생명력을 가진 나무라는 것을 알고 더욱 늠름하게 살아가길 응원한다.
가을의 대장주는 은행나무와 단풍나무일 것이다. 그러나 단풍나무는 나무가 그리 크지 않고 고목이 없다. 은행나무는 역사와 관록을 자랑하는 듬직한 모습으로 가을을 더욱 가을답게 해 준다. 요즘은 가로수로는 기피식물이 되어가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은행나무를 따라올 가을 나무는 없다. 올림픽공원 앞 도로에는 떨어지는 은행나무 열매를 받아내려고 망을 설치해 둔 것을 봤다. 발에 밟혀 냄새나고, 도로가 더럽혀지니 어쩔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망을 설치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받아내는 모습을 보니 현명함 보다는 어쩐지 쓸쓸한 느낌이 든다. 새끼 낳았는데 엄마가 보기도 전에 몰래 새끼를 데려가 버리는 비정한 모습 같다.
11월 초에는 그야말로 성균관대학교 앞은 노란 은행나무가 온통 덮고 있다. 명륜당은 조선시대 유생들이 유학을 배우던 곳이다. 중간중간 문묘답게 회화나무가 곳곳에 열매를 달고 같이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열매가 살구 비슷하게 생겼다 하여 살구 행(杏)과 중과피가 희다하여 은빛의 은(銀) 자를 합하여 은행이라 한다. ‘공자가 은행나무 단에서 제자를 가르쳤다’고 하는 곳이 행단이다. 그래서 사원, 사당, 문묘 등에 많이 심어져 있다.
지금도 선비들의 공부하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은 명륜당의 가을은 은행나무 때문에 방문객의 발길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출사 나온 분, 신혼 사진 찍는 분, 중고생 등 많은 분들이 이곳에 와서 선비들의 숨결을 함께 하고 간다. 명륜당은 1398년 창건되었는데 이곳 은행나무는 중종 14년 1519년 대사성 윤탁이 심었다고 한다. 명륜당 앞마당에 심어져 있는 높이는 21m, 줄기는 7.3m의 수나무 두 그루가 가장 돋보인다. 아마도 암나무였다면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 같다.
이곳의 나무는 용문사에 있는 은행나무에 비하면 아직 어리지만 1962년 천연기념물 제59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임진왜란 때도 명륜당은 전소되었지만 은행나무는 상처 하나 없이 지금까지 건재하고 있다. 이런 신령스러운 이야기는 용문사의 은행나무도 마찬가지이다.
용문사 입구에 자라고 있는 은행나무는 높이 60m, 둘레 12m가 넘고, 나이는 약 1100년에서 1300년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 생존하는 은행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될뿐더러 동양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인데 천연기념물 30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짚던 은행나무 지팡이를 꽂아놓은 것이 뿌리내렸다는 설과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넘어가면서 지팡이를 꽂아둔 것에서 싹이 자라 커다란 은행나무가 됐다는 설이 있다. 지금도 가을에 용문사에 가면 은행나무 가지가 찢어질 듯 많은 열매를 맺고 수세도 왕성한 나무를 볼 수 있다. 1907년 일본군이 의병의 본거지였던 용문사를 불태웠지만 이 은행나무만은 타지 않고 살아남아 천왕목이라는 호칭을 가지고 있다. 자르려고 톱을 대었을 때 그 자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천둥번개가 일어나 중지하였다는 전설도 가지고 있는 나무이다. 나라의 큰 변고가 있을 때마다 은행나무는 ‘윙’ 소리를 내며 울어 길흉을 예고해주기도 했다 한다. 두위봉의 주목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가장 오래된 나무라고 했는데 지금은 두위봉 주목에 자리를 뺏겼다.
은행잎은 처음부터 지금의 부채꼴 모양이 아니라 진화하며 갈라진 잎들이 합쳐져 오늘날과 같은 부채꼴 모양이 되었을 거라 여긴다. 그래서 은행나무 잎은 넓은잎 나무에 속할 것 같은데 바늘잎나무로 분류한다. 잎의 모양이 오리발을 닮았다 하여 ‘압각수’라고도 한다. 잎은 두껍고 단단한데 항균성 성분이 들어있어 병충해가 없기 때문에 재배하는데 큰 인력이 소모되지 않는다. 은행잎의 성분으로 바퀴벌레 퇴치 약을 만들듯 가을철 은행잎을 모아 망에 담아 구석에 두면 바퀴벌레나 곤충들이 접근하지 못한다. 혈액순환 개선제인 ‘징코민’이라는 약품은 은행잎을 추출하여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나무껍질은 회색으로 두껍고 코르크질이다.
겨울철 은행나무를 보면 단지(짧은 가지)가 유난히 돋보인다. 봄이 되면 긴 가지에서는 잎이 어긋나는데 단지 끝에서는 잎이 서너 개가 뭉쳐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은행나무 꽃은 짧은 가지 끝의 잎겨드랑이에서 나오는데 너무 작아 눈에 띄질 않는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그곳에서 열매가 매달린다. 다른 나무와는 달리 사람의 손에 의해서만 번식이 가능하다. 열매가 크고 무거워 바람에 굴러가지도 못하고 냄새 때문에 곤충이나 동물들의 도움을 받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이 씨를 심어 묘목으로 번식시킨다.
인류와 가장 오래도록 함께 해온 은행나무는 가을의 정취를 듬뿍 안겨 주며 우리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내준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세월을 데리고 서서히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