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를 끓이는
3일 전에 사놓은 제철 동죽 한 팩이 냉장고에서 발을 쭉 내밀고 있다. 출수관에서 빠져나온 부유물이 플라스틱 통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3일이 지나도록 살아있는 동죽을 세찬 수돗물로 씻는다. 순식간에 벌어져 있던 입을 꽉 다문다. 살아있는 채 뜨거운 물에 담길 동죽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파, 마늘, 청양고추와 함께 떠오르는 껍질이 홀랑 벗겨진 동죽의 살점. 껍질이 분리되어 스텐 냄비에 부딪히며,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낸다.
칼국수 건면을 삶아 끓여둔 육수에 넣고 3분을 더 끓인다. 육수가 스며들어 면에 가장자리가 반투명해진다. 뽀얗고 시원한 국물이 그릇에 담겨 연기가 폴폴 난다.
밤산책은 오래된 습관이라서, 날마다 달이 어떤 모양으로 기울고 있는지, 차고 있는지 확인한다. 초승달이다가 상현달이다가 보름달이다가 하현달이다가 그믐달이 삭이 되고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대학 시설 노교수는 ㄱ 과 ㄴ 을 칠판에 그리더니 달을 구별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달의 주기는 ㄱ 에서 시작해서 ㄴ 으로 끝난다. 이 말은 오래도록 내가 초승달과 삭을 구별하게 만들어주었다.
김포에 있는 외갓집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비포장 길에 차는 덜컹거리고 우측으로 쏠렸다가, 좌측으로 쏠렸다가,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어린 세 자매는 좌우로 흔들리며 쏟아지는 잠을 견뎠다. 그때 차창밖으로 둥그런 노란 달이 우리를 쫓아오고 있는 게 보였다.
아빠 달이 우릴 쫓아와.
우리는 잠에서 깨서 신나서 소리쳤다. 어린 세 자매는 우리가 우연히 서쪽으로 긴 길을 달리고 있어서 달이 쫓아오는 것처럼 보였다는 걸 몰랐다. 아빠는 빠르게 차를 몰았고, 달은 국도를 달려 집으로 향하는 우리를 언제까지고 쫓아올 것 같았다. 달빛이 밝아서 차 안은 은은한 노란빛으로 감싸져 있었다.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보면 달은 7층 높이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주 멀리 있어서 언제 어디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달.
밤산책을 하는 내내 달이 나를 쫓아온다. 내 옆에 있다가 내 뒤에 있다가, 내 앞에 있다. 아주 가까이 있는 소망같이. 잡힐듯한 희망같이.
새 동네는 달빛처럼 소리가 없다. 아주 조용하다. 밤마다 골목을 채우던 주정뱅이의 고함이 없고, 집마다 다투던 싸움소리가 없다. 주차 경적소리가 없고, 길고양이의 영역다툼 소리도 없다.
조용한 동네를 달빛을 받으며, 산책을 한다. 동죽을 닮은 달이 말없이 뒤를 쫓아온다.
봐라, 달이 뒤를 쫓아온다. *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 제목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