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해

잘 살아야지 했다가

by 빨강




안개비가 종일 내렸고, 창밖에 도시는 안개비에 싸여있다. 지나가는 차들이 대신 빗소리를 낸다. 3월이 되었는데 들려오는 소식마다 비보다. 내 몸은 습기를 잔뜩 머금었다. 기침을 할 때마다, 흉통이 울린다. 꽃이 곧 필 거라는 소식이 가지 끝마다 돋아나 있는데, 아직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지막 집들이를 온 지인들이 “이 집에서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응원을 해주고 떠난 지 이틀 뒤 전화가 왔다. 슬픈 아주 슬픈 목소리로 세상에서 한 생명이 떠나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가슴털이 하얗고 흰 양말을 신어서 크림이라고 불렸는데,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였다. 언니는 한마디 끝마다, 울었다. 더 이상 생명을 책임지고 싶지 않던 언니와, 그럼에도 하루에 두 번 밥을 주던 날들과, 오래 살라고 중성화 수술을 해주고 보일러실 케이지에서 돌봐주었던 장면들이 한 번에 떠올랐다. 되지도 않는 위로를 해주고,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곱씹다가 우리 곁에 살다 간 것들이 떠올라 눈물을 흘렸다.



마당으로 찾아온 생명에게 밥만 주다가, 이름을 붙이다가, 정이 들다가, 어차피 내가 키우지도 못할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할 수가 없어, 죽어가며 찾아온 고양이를 싣고 병원으로 가다가, 끝내 생명을 다한 고양이를 위해 벌게진 눈으로 형부는 돌밭에 땅을 파고, 언니는 집 앞에 돌무덤을 만들었다. 땅을 고를 때 나온 온갖 돌로 쌓아 올린 돌무덤에 주변으로 내년에는 꽃을 심어야지 했다.



언니네 집으로 구불구불한 산길은 지는 해를 향해 있어서 눈이 부셨다. 이 빛이 꺼질 걸 알면서도 아직은 찬란한 이 빛 때문에 눈살을 찌푸렸다. 울고 있는 언니를 떠올리며, 엑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가며, 밟았다. 해가 서산 위로 사라졌다. 산 위로 붉은빛이 사라졌다. 어둠이 산길에 내 앉았다. 눈물이 눈꼬리에 맺혔다. 이제야 죽음이 실감이 났다.






아주 짧게 살다 간 작은 생명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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