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
눈 오는 날의 생일이란 책을 읽고 있을 때 창밖으로 눈이 내렸다. 눈이 모든 곳에 쌓이기 시작했다. 차양막에, 덤불 위에, 쌓아놓은 각목 위에, 말라비틀어진 고춧대 위에. 몇몇의 남자들이 가래를 밀며, 도로의 눈을 치웠다. 무색할 만큼 돌아서면 눈이 바닥의 흙과 엉겨 붙어 검게 쌓였다. 치우는 일이 소용없을 것 같은데도 남자는 어깨와 머리 위에 눈이 달라붙도록 두었다. 그럼에도 남자는 가래로 눈을 밀어 도롯가에 쌓아두기를 계속했다. 도로를 다니는 모든 사람을 배려하려고 남자는 의미 있는 눈을 맞았다.
바람이 부는 대로 전깃줄에 쌓인 눈은 퍽퍽 소리를 내며, 눈길 위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한 번에 떨어졌다. 반쯤 녹고, 반쯤 아직 눈인, 눈도, 물도 아닌 어중간한 형태로.
누군가와 헤어짐을 약속하고 오는 길에 쌓인 눈이 바퀴를 붙잡는다. 드르륵드르륵, 얼음이 갈리는 소리가 난다. 핸들을 꼭 잡고, 휘어지는 도로를, 사방으로 흩날리는 눈발을 가르며, 달린다. 차창으로 수천 개의 눈이 몸을 던진다. 헤어져야 하는 얼굴들이 눈안개처럼 어른거린다.
나무로 된 밀문에는 잔치국수, 칼국수, 곰장어, 닭발, 돼지고기볶음, 똥집이라고 쓰여 있었다. 문을 열자, 열댓 명의 아주머니들이 일제히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하나같이 잔치국수를 드시고 계셨는데, 국물이 모두 뻘겠다. 연탄난로 위에 양은 냄비에서 멸치 우리는 냄새가 솔솔 나고, 입술이 새빨간 주인아주머니는 단골들과 콩나물 무치는 방법, 시금치 무치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마늘을 넣지 않는 게 비법이라고.
스텐 냉면 그릇에 나온 잔치국수에는 김가루와, 깨소금이 뿌려져 있었다. 소박한 고명이 다였다. 면발을 들어 올려 입안으로 밀어 넣자, 아주 부드럽게 꿀꺽 삼켜졌다. 밑반찬으로 나온 콩나물은 아삭거리고, 김치는 적당히 시큼해서 잔치국수와 잘 어울렸다. 국물은 진하지 않고, 슴슴한 맛이었다. 국물과 함께 입안으로 들어온 깨소금과 김가루가 고소함을 더해 주었다. 눈을 잔뜩 맞은 마음이 반쯤 녹아내렸다.
연탄이 타는 내음과 그릇이 부딪히는 떠들썩한 소리와, 아주머니들의 생활이 묻어나는 농담에, 국수가 술술 들어갔다. 그 공간에 따뜻한 모든 것이 마음속에 들어앉았다. 헤어지고, 새롭게 만나는 모든 관계들이 사람의 일이란 다 그렇지 하며, 이해되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