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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

인간의 것, 하늘의 것

by 빨강


앞집 감나무 까치밥이 공중에 달려 있다. 밑 가지는 인간의 것 윗 가지는 하늘의 것.


집 옆 까맣고 동그란 묵향나무 머루 같은 열매에 새들이 찾아오기 바쁘다. 박새가 왔다 가고 까치가 왔다 가고. 참새가 왔다 가고 푸른 꼬리가 멋진 물까치 떼가 왔다 간다. 말이 많은 새들은 이 집 저 집 소문을 날아와 열매를 나눠 먹으며 떠든다. 까치가 물어온 소문은 요란하다. 먹으면서도 쉬지 않고 깍깍거린다. 번역되지 않은 소문은 번지고 번져서 온 동네가 떠들썩하다.


옆집 나무가 잘리는 소리로 동네가 울린다. 위잉 위잉 전기톱 소리가 나무의 비명처럼 들린다. 가을의 세찬 바람에 가지가 찢겨나간 나무들이 흰 속살을 보이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축 쳐져 있다. 인부들이 가지를 잘라내는 동안 새들이 전깃줄에 앉아 굽어 보고 있다. 새들의 먹고 쉴 곳이 사라졌다. 몸통이 잘려나간 묵향나무에서 열매들이 바닥에 짓이겨져 있다. 뾰족한 이파리들이 잘려나간 머리칼처럼 바닥에 흩어져 있다. 나무가 가리고 있던 하늘이 드러나고 새들이 집으로 돌아간다.


밤기운이 하늘에 차오른다. 집을 잃은 새들의 노랫소리가 뒷산에서 지저귄다. 산 아래 나무에 모여 잘려나간 나무의 행방을 수소문해 보는 새들. 푸드덕푸드덕 오랫동안 열매를 쪼아 먹던 새마저 산그늘로 들어서면 어둠이 마을 지붕을 덮는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밥 짓는 냄새가 골목에 넘실댄다. 어느 집의 김치찌개가 어느 집의 고등어구이가 아랫집의 된장찌개 냄새가 피어오른다. 부엌 열어 놓은 창문으로 저녁 냄새가 들어온다.

그제야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친다. 칙칙칙 압력에 돌아가는 추가 멈추고 전기밥솥에서 새소리가 난다. 밥이 지어지고 있다고 새가 운다. 가스불에 어제 먹다 남은 근댓국을 올린다. 소박한 한 상의 밥이 차려지려고 가을의 어둠이 창밖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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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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