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른다
달리아 화분이 화원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 붉은빛이 화원을 환히 비춘다. 달리아 화분을 이리저리 비교해 본다. 가장 꽃이 많이 필 것 같은 화분을 고른다. 중앙에 두 송이 꽃이 피어 있고 사방으로 꽃봉오리가 달려있는 것을 고른다. 손톱만 한 봉오리들이 가지 끝에 피어올라 있다.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밝은 색 꽃이면 오래오래 두고 볼 수 있으리라. 화분을 들어 올린다. 품에 안고 걷는다.
버스 창밖으로 여름과 가을의 풍경이 지나간다. 버스 안은 약하게 틀어놓은 에어컨 때문에 시원하다. 버스가 급정거를 할 때마다 활짝 핀 꽃송이가 흔들린다. 꽃대가 꺾일까 봐 화분을 끌어안는다.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붉고 화려한 꽃.
비밀번호를 누르고 엄마네 집으로 들어선다. ‘엄마’ 하고 크게 부른다.
화분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남동생이 소파에서 졸고 있다 일어난다. 아빠가 일어선다. 나를 끌어안는다. 한 팔로 화분을 들고 한 팔로 아빠의 어깨를 안는다. 엄마가 안방에서 나온다.
이게 웬 꽃이야.
엄마 주려고 사 왔어.
달리아네.
엄마, 아빠가 말한다. 엄마, 아빠는 꽃을 보고 이름을 알아맞힌다. 엄마가 거실 탁자에 달리아 화분을 올려놓는다. 향기를 맡는다. 꽃은 화려하지만 향기가 없는 꽃. 엄마는 꽃을 바라본다. 꽃이 화려해서 눈이 다 시원하다. 아픈 두 눈을 깜박이는 엄마.
엄마는 화분을 들고 베란다로 간다. 수돗가에 놓은 대야에 바가지가 둥둥 떠 있다. 꽃에 물을 흠뻑 준다.
오래 보겠네.
거실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꽃을 놓아둔다.
봐 봐. 네가 저번에 가져다준 프리지어 가을인데 꽃대가 났어.
프리지어 흰 꽃 봉오리가 창밖을 향해 있다.
엄마는 꽃을 좋아해. 뭐든 피워내. 우리를 피워낸 것처럼.
우리는 나란히 앉아 베란다 밖을 내다본다. 가을바람이 나무꼭대기를 스쳐 간다. 나뭇잎이 부딪히며, 어느 것은 떨어지고, 어느 것은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