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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사람이 지나간 자리

by 빨강



손님이 열흘을 머무르다 돌아갔다. 작은 방바닥에 이불이 세 겹 깔려 있다. 머리를 받쳤던 베개도 가운데가 옴폭 들어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집안에 있던 이불들을 빨기로 한다. 열흘 간의 먼지가 공기 중에 떠다닌다. 창으로 들어온 햇빛에 먼지의 몸통이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게 보인다.


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버튼을 누른다. 사십여분이 지나고 발랄한 알림음이 세탁실에서 들린다. 덮는 이불을 세탁기에서 꺼내서 옥상으로 올라간다. 햇볕에 달궈진 스테인리스 건조대가 양팔을 어깨 위로 들어 올리고 있다. 이불을 탁탁 떤다. 몸이 옥상밖으로 딸려 내려갈 듯 휘청한다. 펼쳐진 빨래 건조대에 차렵이불을 널고 네 귀퉁이를 탁탁 잡아당긴다. 건조대 귀퉁이를 이불과 함께 빨래집게로 집는다.


햇볕이 이불의 주름을 다림질하는 동안 두 번째 이불을 빨고 다시 옥상에 넌다. 바람이 다녀간 자리에 이불의 축축함이 사라져 있다. 새들이 해를 가리며 낮게 날자. 이불 위에 새의 날개 그림자가 잠시 머문다.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고 시장에 간다. 주말 시장.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히며 지나다닌다. 채소를 파는 상인의 목소리와 딸기를 떨이하는 목소리가 겹쳐진다. 세팩에 만원이라는 엄지손톱만 한 딸기를 집어든다. 바나나도 한송이도 산다. 노란 빛깔이 먹음직스럽다. 냉장고 안쪽에 있는 김치 한 포기가 생각나 정육점에서 고기도 사고 채소가게에서 마늘종도 산다. 그렇게 오늘의 저녁이 차려진다.


손님이 가고 난 자리엔 긴 머리카락이 올올히 흩여져 있다. 손님의 냄새가 밴 방에서 청소기로 채 빨려 들어가지 못한 머리카락을 손날로 쓸어 모은다. 왔다간 사람의 자취가 서서히 지워진다. 온전히 다시 우리만의 공간이 된 자리에서 잠시 멍하다. 고양이가 다리에 머리를 부비벼 지나간다.


저녁으로 김치찌개를 해 먹고. 노을이 져 버린 옥상으로 올라간다. 어둠이 이불에 차갑게 앉아있다. 선뜻한 이불을 말아 들고 어두운 계단을 한발 한발 확인하며 내려온다. 발끝의 감각으로 계단 모서리를 찾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자. 우리집 냄새가 확 끼쳐온다. 그래 이제 우리만 남았다.

열흘 간의 긴장이 녹아내린다. 발끝에 장판의 온기가 닿으면서 어깨가 내려온다. 집 안으로 들어온 이불에서도 온기가 느껴진다. 정말 손님이 갔다. 또 우리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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