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꽃밭과 삶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살고

by 빨강




성당의 긴 담벼락 옆을 걷는다. 적색 벽돌들이 어슷어슷 포개져 머리 위로 길게 늘어서 있다.

샐비어, 맨드라미, 구절초, 메리골드 이파리가 성당 옆 화단에서 봄을 기다린다. 아직 날이 쌀쌀해서 바람에 이파리가 바르르 떨린다. 단단히 내린 뿌리로 꽃을 피울 준비를 하는 연두색 꽃봉오리. 고슬고슬하게 일어난 흙 사이로 하루가 다르게 뻗어나갈 뿌리.


색색깔의 꽃이 필날이 다가오고 있다. 모종 앞에서 살아가는 여러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노랗고 빨갛고 검붉은 꽃들 옆에서 지나갈 많은 사람들을 그려본다. 앞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그날이 특별한 날이 어서가 아니라. 많은 날들 중 하루일 뿐일 날에 하필 그 시간에, 출근을 하며, 약속 시간에 맞춰, 등하원을 시키며, 퇴근을 서두르며, 기도를 하러 꽃밭 앞을 지나갈 많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사람을 굽어 살핀다는 여러 신들을 떠올리며, 성모마리아 상 앞에 초를 켜고 오늘의 하루를 빌어본다. 양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다. 불확실한 내일이 평범한 날이길 빌어본다. 불안이 습관처럼 찾아오는 날에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싸 쥐고. 고개를 숙여 신에게 말을 건다.


제가 살아내도 되겠습니까


성당 앞을 빗자루로 쓸고 있는 노인에게 고개 인사를 한다. 빗자루가 지나간 자리에 틀린 시험지처럼 모래선이 죽죽 그어져 있다.


제가 살아도 되겠습니까


성당 앞 허벅지 높이의 화단에 걸터앉아 살아있는 것에 대한 동의를 구한다. 오늘 아침에 목에 걸려 안 넘어간 새끼손톱의 절반보다 작은 노란 알약의 이물감이 목구멍에서 느껴져 침을 여러 번 삼킨다.


성당 앞을 쓸고 있는 노인보다 큰 싸리 빗자루가 쓴 데를 또 쓸고 쓴 데를 또 쓴다. 노인의 얇은 점퍼가 바람에 부풀어지고 쓸려나간 모래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다.



keyword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