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지 않는 알림음
잡채
청경채 꼭지를 자르고 세로로 반을 갈랐다. 양파를 까고 버섯의 밑동을 따고 파프리카 속을 비웠다. 양파채를 치고 노란 파프리카의 채를 쳤다. 붉은 파프리카와 표고버섯의 채를 마저 치면서 생각은 뒤통수의 핸드폰 알림에 가 있었다.
양파를 볶자 달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색이 연한 차례대로 재료들을 따로따로 볶았다. 스테인리스 볼에 둥그렇게 돌려 담은 재료들이 알록달록했다. 당면을 삶아 찬물에 헹궈 물기를 빼고 잡채를 무쳤다. 간장과 설탕과 참기름에 몸을 뒤적이던 잡채에서 윤기가 흘렀다. 알림음은 아직도 울리지 않았다.
아무 날도 아닌 날 오랜만에 잔치음식을 차렸다. 속이 시끄러웠다. 복잡한 음식을 하면 무작위로 떠오르는 생각에 집중하지 않을 수 있다.
열어둔 부엌 창문에서 앞집에서 틀어놓은 정치 유투버의 격양된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특정 당을 지지하는 목소리에 잡채를 접시에 담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프라이팬과 도마, 칼, 채반, 그릇들을 개수대에 넣고 물을 틀었다. 유투버의 목소리가 수채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세찬 물소리가 부엌을 채웠다.
주방세제를 수세미에 펑핌하고 설거짓거리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기름기가 묻은 프라이팬을 연신 세제로 닦았다. 뜨거운 물에 세 번쯤 닦아내자 기름기가 걷혔다. 알림음 소리를 듣지 못할까 봐 수돗물을 몇 번 잠갔다 틀었다.
잡채가 놓인 식탁에서 당면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당면에서 채 썬 채소의 맛이 느껴졌다. 연락이 없는 핸드폰을 뒤집었다.
잡채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바로 답이 오지 않았다. 반찬통에 남은 잡채를 덜어 넣었다. 투명한 플라스틱통 겉면으로 엉킨 당면과 고기와 청경채, 붉은 파프리카가 보였다.
끝내 연락은 오지 않았고. 거실의 불을 켰다. 인공조명을 식기건조대에 나란히 누운 유리그릇들이 튕겨냈다.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