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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목소리

한술의 밥을

by 빨강



수건을 빨래바구니에 넣다가 허벅지에 든 멍을 발견했다. 어디서 부딪쳤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덩그러니 허벅지에 검푸른 꽃.

세탁실 창밖에서 나이 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60대쯤 되어 보이는 목소리는 애잔했다.


밥을 왜 안 먹었어. 왜 아직까지도 밥을 안 먹었어, 엄마. 밥 먹어야지. 빵에다 우유라도 먹어야지. 밥 먹어, 엄마. 밥 먹어, 엄마.


햇살이 내리쬐는 골목 귀퉁이 평행주차된 차 사이에 그늘에서 골목길을 가르는 목소리.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똑같은 말을 하는 목소리.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 노모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으며 발을 동동 구르는 여자는 한숨과 짜증이 뒤섞인 말로 엄마를 다그쳤다. 어르고 달랬다.



엄마는 하루에 한 끼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밥이 목구멍에 꽉 막혀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다가 오전에 먹은 밥이 소화가 안 돼서 쉰 트림이 난다고 했다.


엄마 밥을 먹어야지. 먹어야 안 아프지. 먹고 싶은 거 있어? 내가 시켜 줄게. 아니면 낼모레 같이 밥 먹을까?

어두운 거실에서 소파에 누워서 좌측으로 돌린 얼굴 위에 휴대전화를 올려놓고 전화를 받는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의 왼볼에 핀 세 개의 검푸른 검버섯.

엄마의 맞은편에 있는 고상과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가 한 장면이 되어 머릿속에 떠오른다.


엄마에게 생선살을 얹은 한술의 밥을 떠 먹이고 싶다. 아가처럼 얌전하게 앉은 엄마에게 국에 밥을 말아 한술 입에 넣어주고 싶다. 꼭꼭 씹어 먹으라고 잔소리로 잊지 않으며, 밥 한 공기를 다 먹을 때까지 옆에 있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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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