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현수막 속 사진들

바람이 잉잉 소리를 내며 운다

by 빨강



경찰서 앞 현수막이 도로 옆 마로니에 나무 사이에 묶여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나부낀다.


현수막에는 실종아동 3명의 사진이 실려있다. 실종 됐을 때의 얼굴과 AI가 현재의 얼굴일 것이라 예상한 얼굴이 나란히 붙어있다. 사연도 가지가지. 집에 침입해 아이를 훔쳐갔다는 사연. 골목길에서 잃어버렸다는 사연. 놀이터에서 잃어버렸다는 사연. 한 살짜리 흰 내복을 입은 아이가 보행기를 타는 사진. 나무에 기대고 활짝 웃고 있는 남자아이 사진. 바람에 나부끼는 얼굴들이 웃었다, 울었다. 얼굴을 찡그렸다, 폈다한다. 30대가 된 아이들은 얼굴에 그늘이 하나도 없다. 낯빛도 모두 뽀얗다. 어린 얼굴 그대로 어른이 된 것처럼.


엄마는 20년 살던 집을 팔았다. 20년간 쌓여만 왔던 서랍장과 벽장을 뒤집었다. 우리 자매가 썼던 방 벽장 안에선 각종 상장과 졸업장, 졸업앨범, 식구수 대로 앨범이 나왔다. 지금은 사라진 백화점 쇼핑백 안에는 앨범에 다 담지 못한 사진이 수북했다.


엄마는 오래오래 우리 어릴 적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어린 얼굴은 웃고, 웃고, 웃고 있었다. 행복한 어린이처럼 사진첩 비닐 안에 박제되어 있었다.


사진기 앞에서는 반사적으로 웃어야 했다. 김치, 치즈, 모두 웃는 입모양을 흉내 낸 단어들이었다. 사진을 찍을 때 웃어야 한다는 건 당연한 거였다. 우리는 행복한 시간들만 찍었다.


우리는 사진 속 행복 간 순간을 떠올려야만 살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비료 같은 것이라고. 웃을 수 있었던 시간을 꼽씹어 되새김질하며. 그 순간이 마음속에 남아 어른이 되어서도 힘들고 지친 순간에 그 기억을 하나하나 꺼내어 보며 살아내게 된다.


그 순간을 잊어버린 사람들은 어떤 힘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사랑받았던 기억. 사랑했던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텅 빈 구멍을 무엇으로 채우고 있을까.

30년전 사라진 아이를 찾는 부모의 마음속에 소금물이 스며들어 밀려나갔다 밀려들어온다.


바람에 펄럭이는 현수막 속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찾으며 우는 소리가 잉잉 현수막을 뒤집을 듯 들려온다.








keyword
화, 목 연재
이전 03화한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