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귀환 그 이후, 나의 직장생활 28년 (11)

신입대리 중국을 누비다(7)

by 리본안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세기 3장 17절)


중국여행을 이야기하니 또한 마지막장에 중국의 명승지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H대리의 넓은 배려(?)로 출장지를 갈 때마다 가까운 명승지를 둘러보았지만 굳이 시간을 내서 (차로 대여섯 시간?) 굳이 들러야 했던 곳이 2곳이 있는데, 바로 계림(桂林)과 황산(黃山)입니다.

계림의 산수가 천하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고 실제로 계림에서 유람선을 타고 마치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과 같다는 이강(漓江)의 입구를 따라 6시간 유람하여 본 풍경은 단연 으뜸이었습니다마는 저에게 평생 남을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곳은 황산이었습니다.


중국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태산 등을 포함하여 5대 명산이 있다고 합니다.

산동성에 갔을 때 지척에 태산이 있어서 가봤으면 했으나 H대리는 굳이 내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변명을 하듯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5대 명산 중 나머지 4개의 명산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빼어난 산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황산이고, 중국사람들이 죽기 전에 한번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 바로 계림과 함께 이 황산이니 이번 여행길에 반드시 들릴 수 있었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H대리의 바램은 반만 이루어져 우리는 기여코(?) 계림에 가는 일정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황산에 가는 것은 결국 실패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일행 중 저 혼자만 황산에 가게 되는 행운이 다른 쪽에서 찾아왔습니다.


저와 이사님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이사님은 한국에 머무르시는 한편, 저는 다시 우리 사업본부의 본부장님과 기술팀의 이사님을 모시고 중국으로 들어와야 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 본부장님께서는 가속화되는 글로벌시대에 우리 사업본부도 중국에 투자를 해서 어느 형태로든 사업을 벌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계셨고, 그동안 제가 간간히 보고 드린 답사 보고서를 토대로 중국의 중요한 요충지를 직접 방문하셔서, 중국의 현황을 직접 느끼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렇게 이루어진 2주간의 출장기간 동안 우리는 회사의 다른 사업본부에서 중국 현지 업체와 이미 합작하여 운영하고 있는 조미료 공장을 벤치마킹 삼아 방문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공장은 절강성 남부 변두리지역에 있었는데, 여기에 5년간 동사장으로 근무하다가 한국으로 귀국했던 기술팀의 이사님이 공장을 방문하는 김에 한마디 하셨습니다.

"본부장님, 어렵게 여기에 오셨는데, 이참에 그 유명한 황산이라도 한번 보고 가시지요? 지척에 있는데, 저는 여기서 5년이나 근무했는데도 여태껏 한 번도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이 공장에 장기 파견 나와 계시던 두 분의 저희 회사 부장님들도 덩달아 거들었습니다.

"예 본부장님 이번에 꼭 한번 보고 가시죠? 덕분에 저희들도 그 유명하다는 황산 한번 구경했으면 합니다."

" 그래요? 그럽시다. 그런데 여기서 얼마나 걸리나요?

"예 거리는 멀지 않은데 도로가 좋지 않아 대여섯 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우리는 회사차로 쓰이는 봉고차를 몰고 가기로 했고, 우리 회사 전용 운전기사는 통상적인 일과를 벗어나면 별도의 수당을 더 주며 달래어야 움직이는 게 보통인데도, 이번에는 목적지가 황산인지라 별도의 수당도 필요 없다고 하며, 대여섯 시간 꼬불꼬불한 길을 운전해 가면서도 기분이 좋은 지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가는 도중 한번 식당에 들러 휴식 겸 간단한 요기를 한 후 우리는 드디어 황산에 도착하였습니다.

저는 내심 출장 중이라 세미정장에 구두를 신고 계셨던 본부장님과 이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산에 오를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황산은 고도가 1800m를 넘는다고 하는데, 이런 복장으로 어떻게 산을 오르지 하는 걱정이 들었는데, 이 걱정은 황산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 이내 사라졌습니다.


제가 중국을 여행하면서 이색적으로 느낀 것 중에 하나는 평지에 펼쳐진 끝없는 지평선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70%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대부분의 지평선에는 꼭 산과 하늘이 맞대어 있습니다.

그런 풍경에 익숙해져 있는 저에게 한없이 펼쳐진 평야와 붙어있는 지평선은 절말 이질적인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왜 중국사람들이 음식에 대하여 관대한 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큰 중국대륙의 대부분은 곡식을 재배할 수 있는 평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북경의 경우만 하더라도 산은커녕 동산을 보기도 힘이 듭니다.)

평지는 곧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지이고, 따뜻한 지역의 경우는 쌀의 이모작이 가능하여 가을에 심는 벼의 수확물을 음식보다는 공업 원료로 사용하는 나라이기에, 70%의 일부를 개간하여 어렵게 먹을거리를 얻어야 하는 한국보다 남기는 음식에 그렇게 너그러웠던 모양입니다.

음식을 남기면 지옥에 간다는 훈계아래 살아야 했던 나라에서 제가 평생 동안 남긴 음식보다 6개월 중국에서 남긴 음식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반면 휴일에 걸어가도 등반할 만한 산이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중국인들에게 산은 어쩌면 평생에 한번 가보고 싶은 유원지였는지 모르겠습니다.

황산의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등산복차림과 등산화를 신은 등산객들이 아닌, 케이블카 앞에서 줄 서 있는 수많은 관광객들이었습니다.

케이블카를 기다라고 있는데, 앞 줄 입구에서 웬 군복을 입은 군인 하나와 개찰 직원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개찰직원이 군인에게 삿대질을 하고 주위의 관광객들에게 사정을 큰 소리로 얘기하니, 주위의 관광객들 역시 군인에게 한 마디씩 하며 개찰직원을 거들게 되자, 마침내 군인은 머쓱해하며 뒤로 물러섰습니다.

H대리가 어떤 상황인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 군인은 군인이라는 신분으로 케이블카를 공짜로 탈라고 했던 모양입니다. 옛날 공산주의 시대에는 그런 특권이 있었는지 몰라도 지금은 어림없는 일입니다."


케이블카는 평지인 산의 입구에서 정상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긴 시간 케이블카를 타고 마침 정상에 도착해 보니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정상에는 수많은 호텔과 식당이 들어차서 자그마한 유원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고서야 황산에서 1박을 하고 온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국처럼 정상을 정복하고 하산해서 기슭에서 1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산 정상에서 1박을 하고 온다는 뜻이었습니다.

정상에서는 명소에 따라 꼬불꼬불 능선들을 타고 관광하는 투어 프로그램이 있어서 저희들은 가이드를 따라 산을 돌아다녔습니다.

기암절벽, 능선이나 절경이 돋보이는 소위 인증삿이 필요한 곳마다 가이드는 전승되는 설화나 옛이야기들을 특유의 과장된 몸짓으로 맛깔나게 풀어내었습니다.

그런 설명을 듣고 보니 황산의 절경은 더욱 돋보였습니다.

또 이색적인 것을 발견하였는데, 등산민족인 우리 한국사람들에게는 땅을 밟아 가며 느끼는 등산의 묘미가 정상 능선에서야 시작되니 너무 짧아 아쉽게만 느껴질 법 한데, 중국인들에게는 이게 또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이 능선투어에는 관광의 맛을 느끼게 하려고 관광객들을 가마에 태우고 다니는 가마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희들은 경험 삼아 본부장님에게 한번 타 보시라고 하였지만 본부장님은 '왜 이렇게까지' 하시면서 끝내 사양하셨고, 대신 중국문화에 익숙하셨던 기술팀의 이사님이 선뜻 가마에 타셨습니다.

하지만 이사님은 곧 후회를 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꼬불꼬불한 능선길과 바위투성이의 아득한 절벽길을 두 발로 걸어가는 우리조차 아찔한 현기증이 일어 아래쪽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두 사람의 어깨 높이의 가마 위에서 흔들거리며 앉아 있는 이사님은 오죽하셨겠습니까?

그 좋은 절경을 구경하기보다는 계속 손잡이를 꽉 쥐시고 계셨고, 얼굴은 두려움으로 하얗게 질리셨습니다.



화려한 호텔의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당연히 술이 동반된)을 먹었지만 해발 1800미터의 고산에서의 숙박이 흔치 않은 경험이라 두 부장님들과 저는 그냥 자기에는 너무 아쉬워 결국 자정쯤 다시 호텔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촘촘히 별들이 박혀있는 하늘을 지붕 삼아 따로 챙겨 온 양주와 안주감을 꺼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과 신선한 공기로 인해 우리들의 이야기는 끊일 줄 몰랐고,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제가 본 황산의 풍경은 국내의 산과 비교하여 어느 수준이었을까요?

제가 아는 선배 중에 등산마니아가 있는데, 그 형은 바쁜 직장생활 중에서 등산을 가면 오직 설악산만을 간다고 합니다.

그 선배는 다른 산을 두루 다니는 것보다는 설악산을 한번 더 가는 것이 낫다고 하며, 설악산을 한국의 최고의 산이라고 꼽았습니다.

설악산은 사시사철 변화가 아름다워 아무리 가도 질리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 선배만큼은 아니라 설악산의 진면목을 모를 수도 있지만, 제가 몇 번 가본 설악산보다는 솔직히 황산의 풍경이 한 수 더 높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상에서 경험한, 돈이면 다 즐길 수 있는 사치는 별도로 하고 말입니다.

(뭐 황산이 설악산 보다 낫다고?

어떤 부분에서도 한국인의 부심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하며 사족을 보태자면...

우리의 범위를 좀 더 확장하여 통일 한국을 꿈꾸어 본다면 우리에게는 천하제일경이라는 금강산이 있습니다.

아마 금강산의 일만이천봉이 황산보다는 몇 수 높겠지요.)


그러나 제가 황산에 대한 경험을 그 많은 명승지 방문 추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한 이유는 사실 황산의 이 아름다운 풍경에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들은 해발 1800미터의 정상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호텔과 식당을 지었을까 궁금해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매일 수많은 관광객들과 종업원들이 소비하는 음식 재료들은 어떻게 공급되고 있을까요? 케이블카를 사용할까? 아니면 우리나라처럼 헬기를 사용하여 나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저는 황산에 도착하여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동안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산의 입구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저는 눈앞에 펼쳐진 황산의 풍경에 압도되었습니다.

산을 발로 오르며 느긋하게 즐기는 풍경과는 달리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등반은 시간이 아주 짧았기에, 저는 이 광대한 산의 풍경을 조금이라도 더 담고자 눈을 분주히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가끔 아찔한 현기증을 느껴보고 싶어 발아래를 바라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발아래 멀리서 조그마한 실선들이 산의 정상을 향해 세로로 기다랗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저것이 등산로인가 보다고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데, 그 길을 따라 조그마한 점들이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마치 길게 줄 서서 움직이고 있는 개미 집단들처럼 보여서

'어 저게 뭐지? 등산객들인가? 아 여기도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뚫어지게 한참을 보니, 그 사람들 등에는 마치 자신보다 더 큰 크기의 먹이를 나르는 개미들처럼 커다란 짐들을 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중국식의 지게(어깨에 맨 작대기 양 끝으로 한 모퉁이의 짐을 지는 방식)를 진 인부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사람들 머리 위로 산 능선 꼭대기까지 아득히 이어진 가파른 계단 길을 보는 순간, 저는 그들이 짊어지고 있는 삶의 고단함이 멀리서도 그대로 가슴에 엄습하여, 한참 동안 가슴이 먹먹하고 정신이 아득하여짐을 느꼈습니다.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별의별 사건들에 대하여 랭킹을 매기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날의 주제는 세계에서 가장 힘든 직업의 순위를 매기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프로그램에서 상위 Top10에 바로 이 황산의 호텔로 짐을 나르는 짐꾼들을 보았습니다!)

제가 호텔에서 누리고 있는 호사와 맛있는 음식들은 해발 1800미터를 한 걸음씩 걸어서 옮기는 인부들의 땀방울들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일의 무게의 경중이야 있겠지만 우리에게 직업이라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의 현재의 노동은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저주받은 결과라고 합니다.

,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힘들게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럼 일이란 단순하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하는 짐일 뿐일까요?

이 글은 이 질문에 대하여 제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도 들려주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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