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면 누가 더 불편할까?
내 인생 첫 시부모님과 함께 하는 결혼생활이 시작되었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은
어머님에게도 큰 스트레스였나 보다
결혼식이 끝나고 다시 만나 뵌 날 머리가 지끈거리신다며
숲 속요정처럼 머리색을 산뜻한 초록색으로 바꾸고 오셨다
붙임성 있고 애교스러운 며느리라면
아주 참 나이스했겠지만
나 역시도 어른들의 이야기에 하하 호호 웃으며 리액션을
보낼만한 넉살은 그 당시에 전혀 없었다
나는 방한구석에 갑자기 놓인 새로 장만한 장식장 같은
존재였던 거 같다. 새건대 이질감 있는 묘한 어색함이랄까
그 당시 시누이는 김밥가게를 새로 오픈하며
어린 아들 둘을 어머님께 맡기게 되었다
첫째는 3살 둘째는 1살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얼떨결에 아버님 어머님 나와 신랑 조카 두 명, 뱃속아이까지 7명으로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버님은 참외를 참 좋아하셨다
식사 후에 과일을 깎아달라고 부탁하셨는데
노랗고 하얀 줄무늬 진 참외는 깎기가 어려웠다
집에서 공주대접 받으며 곱게 자란 건 전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공부 이외에 주방일을 도와본 적도 별로 없었다. 칼사용이 능숙하지 못한 탓에
끙끙대며 식은땀 흘리며 오랜 시간 참외를 깎았다
껍질은 두텁게 잘리고 먹을 수 있는 부분은 점점 적어졌다
"대체 언제쯤 참외를 먹을 수 있는 거니?"
아버님이 주방 쪽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실 땐
참외껍질도 내 마음의 자존감도 조금씩
연필을 깎아나가듯 또각또각 깎여나갔다
지금은 눈감고도 가능한
참외 깎기가 왜 그리 힘들었는지
아마도 꽤나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컸었나 보다
어머님은 빨래를 잘하셨다
어머님이 돌린 세탁기에서 나온 빨래에는
항상 포근하고 은은한 세탁물의 향기가 있었다
내가 한 세탁기 빨래는 섬유유연제를 아무리 들이부어도 모든 빨래가 일관되게 무향무취가 되어 나왔다
신기한 일이었다
가르쳐준 대로 해도 효과가 없었다 그건 18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라 나에겐 해결되지 못한 미스테리다
저녁시간이 되자 압력밥솥에 밥을 해야 했다
물양을 맞추는 것이 꽤나 어려워서
물을 부었다 버렸다 손을 넣었다 뺐다 진땀을 흘리며
한참을 허둥대다가 가스불에 올렸는데
아뿔싸 나의 첫 밥은 죽이 되어있었다
"친정에 다시 가서 밥 하는 거 배워와라!"
아버님이 밥솥을 들여다보며 한심하다는 듯 얘기하실 때 창호지같이 얇고 여렸던 25살의 나는
눈앞이 삽시간에
반투명으로 블라인드처리되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방에 들어가 한참을 울었고
서러움 창피함 속상함은 모두 데굴데굴 굴러
세탁기 속 빨래처럼 엉켜졌다.
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