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이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산다. 엄마가 누군지는 모른다.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어느날 아빠가 핏덩이 갓난아기를 데리고 와서 할머니께 맡기고, 아빠는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지안이를 금이야 옥이야 키웠다. 할머니의 따뜻한 보살핌 덕분에 지안이는 건강하게 자랐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알바를 시작했다. 3년 동안 편의점과 카페,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일을 하며, 사이버대학교를 졸업했다. 지금은 직장을 구해 1년이 넘게 다니고 있다.
매달 월급날이 되면 할머니는 늘 똑같은 말만 반복한다.
“내강아지가 벌어 온 돈을 아까워서 어찌 쓸꼬. 할미가 다 저금해주께.”
“할머니, 이제 내가 돈 많이 벌어오니까 맛있는 것도 사드시고, 예쁜 옷도 사입으세요. 난 할머니가 멋도 부리고, 친구들이랑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면 좋겠어요.”
효도를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할머니는 늘 아끼기만 한다.
작은 회사는 회식이 없다. 술을 한잔도 못 마시는 지안이에게는 딱이다. 회사 분위기가 냉랭하지만, 사적인 질문을 하지 않아서 오히려 좋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고, 나를 불쌍히 바라보는 사람이 없어서 편하다. 회사의 규모는 작지만, 월급이 밀린 적이 한번도 없다. 하지만 이곳의 단점은 딱 하나. 아침 회의시간에 듣는 사장님의 잔소리와 욕설.
지안이는 몇 번이고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지만, 월급날 할머니의 얼굴에 떠오르는 함박웃음을 생각하면 작은 회사를 그만둘 수가 없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회사 사람들을 잘근잘근 씹을 수 있는 현정이와 둘만의 점심시간이 있지 않은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회사를 다닐 가치가 있다.
현정이는 선천성 심장 천공이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구멍이 있었다. 아기 때 심장 수술을 했고, 고등학교 때까지는 일년에 한번씩 간단한 검사를 하러 다녔다. 생활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지만,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가슴의 답답함을 많이 느낀다.
이곳의 작은 회사가 현정이의 첫 번째 직장이다. 서류와 면접을 보고 바로 입사 완료.
‘휴~ 다행이다. 채용신체검사 내역을 제출하지 않아도 되니...’
지난번 공기업 채용과정에서 채용검진으로 탈락이 되었다.
‘천공은 일상생활을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데...’
너무 화나고 억울했지만, 현정이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현정이는 외동이다. 작은 회사에는 현정이보다 1살이 많은 지안이가 있어 서로 의지하며 단짝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현정이는 지안이가 진짜 자기의 언니였으면 하고 바랄 때가 많다. 나이는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지안이는 의젓하고 평정심도 잘 유지한다. 지안이와 현정이가 친해지게 된 계기는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고 나서 부터다.
어느 날, 현정이가
“언니, 나 사실은 선천성 심장 천공이 있다.”
“그래.”
“안 놀라네?”
“뭐 그런 게 있을 수도 있지. 아프지는 않아?”
“응. 일상생활에 문제 없어. 다들 내가 심장에 구멍이 있다고 하면, 모두들 놀라면서 날 안쓰럽게 쳐다보는데. 언니는 그러지 않아서 좋다. 고마워.”
“고맙긴 뭘. 나도 알려줄게 있는데. 나는 할머니랑 둘이 살아. 태어나서 엄마 아빠 얼굴을 본 적이 없어.”
“정말? 언니 외롭진 않았어?”
“할머니가 잘 키워주셔서 괜찮았어. 그런데 사실 엄마 아빠 궁금하긴해. 할머니께는 이 말을 못하겠더라고. 마음 아파하실까봐.”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게 된 순간부터 지안이와 현정이는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다. 가끔씩 사장에게 욕설을 듣고 나면 현정이가 숨을 몰아쉬는 이유를 지안이는 비밀을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지안이는 사장과 이사가 현정이에게 큰소리를 낼 때면 그들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현정이가 다시 아플까봐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