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
지안이는 이 시간만 되면 가슴이 터질 듯이 콩닥거린다. 오늘은 사장이 어떤 꼬투리를 잡아 잡도리를 해댈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현정이는 곧 그만둘 거라던데…. 나 혼자 여기서 어떻게 버티지?’
지안이는 요즘 걱정이 한가득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사장은 샤우팅으로 시작한다. 동생인 이사부터 잡아 족치기 시작한다. 곧이어 새로 들어온 준호에게 불똥이 튀고, 그다음 지안이에게로 날아 들어오는 쌍욕들. 자기 와이프인 실장에게 입에 담지도 못할 막말을 해대는 모습은 정말 가관이다. 실장은 어쩔 줄 몰라 주부습진 가득한 손을 비비고 손톱들을 뜯으며 연신 고개를 조아린다. 남편의 눈도 못 마주치는 실장이 너무나 안쓰럽다. 그러나 오늘 아침 회의의 주요 타깃은 현정이다. 사장은 현정이가 그만두려고 하는 걸 눈치 챈 건지 현정이를 인간쓰레기로 만들며 오만가지 욕설을 퍼붓는다. 오늘도 현정이는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운다.
지안이는 아침 회의 1시간이 늘 곤욕이다. 지안이는 그저 사장의 미친 짓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버텨낸다. 사장의 욕지거리가 끝난 후의 모습도 처참하긴 마찬가지다. 이사는 쌍욕을 해대며 담배를 피우러 나가고, 준호는 그런 이사의 비위를 맞추러 따라 나간다. 현정이는 울고 있고, 실장은 손톱을 깨물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다. 지안이는 그저 사장이 빨리 외근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며 컴퓨터 화면만 멍하니 쳐다본다.
10시 30분.
드디어 사장이 외근을 나가는 시간이다. 10시부터 30분간 모든 직원은 숨도 쉬지 않고 일을 한다. 아니 일하는 척을 한다. 사장이 나가고 나면 이사가 사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욕지거리를 해댄다. 특히 새로 들어온 준호에게. 답답한 마음에 현정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같이 이야기를 할 장소가 없다. 사무실이 워낙 좁다 보니 작은 말소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다 들릴뿐더러 속닥대는 모습도 금새 눈에 띈다. 화장실에서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곳은 화변기가 있는 이상한 구조의 좁은 옛날식 화장실이라 대화할만한 공간이 아니다. 피할 곳도 없이 반복되는 이 생활은 사람을 점점 우울해지게 한다. 오늘도 그렇게 버티다 점심시간을 10분이나 넘긴 후에나 눈치를 보며 “점심 먹고 오겠습니다.” 라고 이야기 하지만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한 채, 문밖을 나선다. 현정이랑 단 둘이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주문을 마치고 화장실부터 간다. 작은 회사에서 화장실을 마주 했을 때 지안이는 어안이 벙벙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화변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사용하기에 불편하기도 하고, 사무실 안에 있어서 볼일 볼 때 나는 소리가 나면 다 들린다는 걸 알기 때문에 웬만큼 급하지 않으면 사무실에서는 화장실을 가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점심시간을 기다려 식당 화장실을 주로 이용한다.
볼일을 마친 지안이와 마주앉은 현정이는 폭포수처럼 억울한 마음을 쏟아낸다.
“언니, 나 정말 더는 못 다닐 것 같아. 가슴이 점점 더 답답해져와. 내일 사장한테 이번 달 말에 그만둔다고 말할거야.”
“그래, 오늘은 해도해도 너무 하더라. 나도 생각해봤는데, 너 그만두면 혼자 버틸 자신이 없어. 나도 그만둘래. 내일 같이 얘기하자.”
지안이도 그만두리라 다짐한다. 현정이가 없으면 그 지랄을 자신 혼자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남아있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와보니, 준호가 김밥을 우걱우걱 입으로 밀어 넣고 있다. 오늘도 사무실에서 먹는구나. 이사는 정말 이상하게도 점심시간에 더 열심히 일을 한다. 준호는 이사와 함께 식사해야 해서 꼼짝없이 붙잡혀 일을 하곤 한다. 지안이는 두 달 전 들어온 준호가 자꾸 눈에 밟힌다. 지안이와 현정이가 그만두면, 준호에게 그 일들을 다 떠넘길 게 뻔하고. 또라이 형제의 욕받이까지 감당해야 하는 걸 알기에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지안이는 CCTV를 등지고
“준호씨! 아까 물어봤던 서류 업로드 하는 방법 알려줄게요.”
라고 말하며, 컴퓨터에 메모장을 켠다.
‘도망쳐요! 여기에서!! 나랑 현정이는 이번 달까지만 다닐 거예요! 꼭 도망치세요!’
준호는 먹던 김밥을 채 삼키지도 못하고 눈이 휘둥그래진다. 지안이는 대답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누가 볼까 얼른 메모장의 글들을 지워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