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는 어릴 때부터 늘 형인 사장과 비교를 당하며 자랐다. 사장은 덩치도 크고, 뭐든 잘하는 만능맨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조차 장남이고, 친탁을 한 형만 이뻐라했다. 부모님도 당연히 형에게 많이 의지를 했고, 형이 무엇을 해보겠다고 하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부모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사장에게 재산을 모두 주었다. 허름한 집까지 모두. 사장은 동생에게 미안했는지 재산의 3분의 1을 나누어주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형이 모셨지만, 재산을 똑같이 나누지 않은 것에 속이 상했다.
‘뭐야? 장남이면 다야? 그래 잘먹고 잘 살아라!’
형에게 받은 돈으로 보란 듯이 성공하리라 마음먹고 야심차게 사업을 시작했지만 번번이 사업은 망했고, 빈털터리가 되자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마저 떠났다. 이사는 다시 한방을 꿈꿨지만, 결국 빚만 잔뜩 짊어지게 되었다.
'아 진짜 형한테는 가기 싫은데…. 아이씨 쪽팔려서. 젠장'
그래도 믿을 구석은 형밖에 없었다.
이사는 그렇게 이 작은 회사에 취직해서 이사가 되었다. 최저시급, 보너스 없음, 휴가 한 달에 한 번, 3일 이상 무단결근 시 퇴사!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노예계약. 그래도 자신의 빚까지 갚아준 사장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
지숙의 사건 이후로 사장은 모든 사람을 적대시한다. 동생인 이사도 예외는 아니다. 늘 막말과 쌍욕으로 화풀이를 한다. 직원들이 수없이 바뀌는 와중에 지안과 현정이 1년 넘게 버텨주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달 전 들어온 남자직원인 준호는 정말 어리바리해서 이사는 두 달 동안 그에게 쓴소리만 해대고 있다. 국가사업으로 일은 넘쳐나는데, 아무리 가르쳐도 자꾸 실수를 저질러 일을 벌려놓으니 목소리는 자꾸 높아만 진다. 그래도 이사는 담배를 피우러 나갈 때면 따라와 곁에 있어주는 준호를 미워할 수가 없다. 준호가 혹여 그만둔다고 할까 봐 내심 걱정도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애가 셋이 있는 아줌마 직원 현주가 들어왔다.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인데, 성실하고 일도 곧잘 하는 듯하다. 이사는 매번 자신에게 살갑게 인사하는 현주가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서울말을 쓰는 아줌마에게 사투리로 대답하려니 쑥스럽기도 해서 인사를 듣고도 그냥 모른 척할 때가 많다. 지안과 현정이 사직서를 내던 날 사장은 다른 여직원을 뽑았지만, 일머리가 없다. 그래서 준호가 두 사람의 업무를 모두 떠안았고, 매일 자정까지 야근을 하고 있다. 사장과 실장이 상의 후 현주를 정직원으로 채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사는 현주가 알바하는 시간에 일 배우는 모습을 보고 말귀도 잘 알아듣고, 손도 빨라 일하는 속도가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매일 힘들게 일하는 준호의 모습을 보며 안쓰러워하던 이사의 마음이 조금 놓인다.
갑자기 사장이 이사를 부른다. 준호를 자르라고 한다. 3개월 동안은 수습 기간이라, 해고가 가능하다고 한다. 현주가 3시간 동안 준호의 하루 치 일을 거뜬히 해내고 있기는 하지만, 이사에게는 말동무도 되어주고 점심밥도 같이 먹어주는 준호가 필요하다. 사장에게 준호를 다시 잘 가르쳐보겠다고 말해 보지만, 사장은 이미 내린 결정을 통보했을 뿐이다.
‘매번 이런 식이야. 지가 사장이면 다야?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니까. 그래 잘 먹고 잘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