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는 마음이 힘들 때 늘 하는 루틴이 있다. 일단 음악을 크게 틀고, 창문을 모두 열어젖힌 후 앞치마를 맨다. 이건 시작한다는 현주만의 신호다. 이제부터 온 집안을 뒤집어엎는다. 오늘은 싱크대부터 시작! 어지러운 수납장을 말끔히 정리하고, 냉장고로 돌아선다. 아까워 버리지 못했던 음식들, 소스들은 모두 싱크대로 직행. 비닐은 가위로 뜯어 음식물을 버리고, 반찬통은 비우고 깨끗이 설거지를 한다. 이쯤 되면 등과 겨드랑이, 인중에 땀 구슬이 맺힌다.
얼굴의 땀방울을 손으로 훔치고, 아이들의 옷장을 뒤집으러 간다. 평소 아이들에게 옷장 정리를 직접 하도록 맡긴다. 그러니 당연히 속옷과 겉옷, 양말들이 여기저기 뒤섞여 있다. 간절기 옷, 겨울옷, 여름옷, 속옷, 양말을 각자 자리에 가지런히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먼지떨이로 집 안 구석구석 먼지들을 털어낸 다음 청소기를 돌린다.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머리카락과 먼지들이 현주의 아픈 마음까지 모두 가지고 들어가는 것 같다. 청소기의 먼지통을 버리니 현주의 근심걱정도 함께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마음이 좀 나아진다. 한바탕 정리하고 나면, 현주는 자신의 마음도 정리되는 듯하다. 그래서 매번 마음이 어지러울 땐 이런 의식을 치른다.
이제는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된 몸을 씻을 차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정말 정성을 다해 깨끗이 씻는다. 선풍기 바람에 머리카락을 말리며 현주는 이 루틴의 마지막 화룡점정을 찍는다. 바로 맥주. 청소시작 할 때 냉동실에 미리 넣어둔 살얼음 낀 맥주에 빨대를 꽂고, 시원하게 빨아 당긴다.
‘캬~ 이 맛이지!’
연거푸 두 캔이나 마셨다.
살짝 알딸딸해진 현주는 머리카락을 마저 말린 후, 침대로 기어들어가 잠이 든다.
현주는 이상한 꿈을 꾼다. 꿈에는 현주의 경단녀 첫 직장 작은 회사가 나오고, 그들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각자의 긴 서사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관찰하듯 그들의 이야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현주는 그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사장의 이야기가 한창 진행 중일 때, 갑자기
“자기야 나 왔어. 벌써 자는 거야? 어디 몸이 안 좋아?”
익숙한 음성. 남편이다. 비몽사몽 눈을 뜨고 일어나 정신을 차려 본다다. 현주는 남편 눈을 보자마자 서러움에 눈물이 차오른다. 남편의 걱정스러운 눈빛에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자기야. 나 작은 회사에서 월급 받았어. 결근도 안 했는데 출석 체크 안 하고 갔다고 하루치 월급 뺐더라. 그리고 세금도 떼고 준 거 있지. 나 그냥 억울해. 경력 단절된 후로 첫 번째 회사인데 이런 취급을 받으며 그만둔 거. 그냥 자존심 상해.”
엉엉 울며 남편에게 참았던 말들을 쏟아 낸다. 남편은 나를 꼭 안아주며
“자기 힘들었겠다. 괜찮아. 너무 무리하지 마. 내가 더 열심히 벌어올게.”
멈추지 않을 것 같던 눈물이 어느새 남편의 토닥이는 손길에 위로를 받고 잦아든다.
현주는 눈물을 닦으며 말한다.
“근데 자고 일어나니까, 그 사람들이 조금 이해되기 시작했어. 꿈을 꿔서 그런가 봐.”
남편은 엄지 척을 날리며 말한다.
“역시 내 반쪽 현주는 회복 탄력성 하나는 타고났다니까! 최고야!”
현주는 백일몽을 꾼 것일까?
백일몽이든 개꿈이든 현주의 마음이 나아진 게 좋을 따름이다.
그래. 모든 사람에게는 이유가 있는 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