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에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잔잔한 자연의 소리는 정신과 육체를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이질적이지만 자연의 소리는 산업적인 소리의 결합이 썩 나쁘지 않다. 만약 이곳이 산업적인 소리만 가득한 공간이라면 구분하지 못하였겠지만 소리의 구분이 확연하다. 이는 감각을 편안하게 해 준다. 과거 내가 있었던 곳에서 느꼈던 곳에서 나는 신경질적인 소리에 귀를 닫고자 산업적인 소리만을 귀 속으로 집어넣었다.
주위의 잡음은 듣기 싫고 잡음은 나를 신경질적으로 변화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것들로부터 회피하는 방법은 오롯이 세상과 나를 분리하는 법이다. 그러나 한정된 공간 안에서 나를 방어하는 법은 나를 막는 것. 타인이 타자를 향해 쏟아내는 것들은 제어할 수 없으므로 나를 보호하는 방법은 내 귀와 내 행동을 제약하는 것. 나를 보고 나에게 내뱉고 나를 향한 폭력으로부터.
히스테릭한 상황에서 자연의 소리는 마음을 평안하게 해 준다. 그러나 또다시 현대인들이 겪는 고충처럼 사소한 것들을 고민하게 된다. 드럭 스토어의 위치나 ‘택배가 이곳까지 올까?’와 같은 사소한 고충들.
그 이후, 그렇게 바빴는지 의문이 들며 일 때문에 단 하루 만에도 어디든지 갈 수 있는데 왜 지금까지 그 많은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고하고 이런 시간을 내지 못하였을까. 그러면서 또 다른 생각을 해보길, 거울은 무엇을 나타내는지 생각하며 그것은 언제든지 나의 외형, 외모, 겉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각을 의식하는 인간의 단계이고 왜곡된 시선이며 공간의 변형처럼 인식된다. 그러나 유리는 투과되고 또한 유리는 빛이 통과되며 빛과 어둠이 동반되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