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샘의 한시 이야기
凌霄多半繞棕櫚(능소다반요종려) 절반은 야자수에 몸 기대어 핀 능소화
深染梔黃色不如(심염치황색불여) 짙은 노랑 치자색도 이 빛깔만은 못하지.
滿樹微風吹細葉(만수미풍취세엽) 나무 가득 미풍 불어 가는 잎새 흔들리고
一條龍甲颭淸虛(일조용갑점청허) 한 줄기 용 비늘은 맑은 하늘에 나부끼네.
[번역과 해설: 흰샘]
당나라 말기의 시인인 구양형(歐陽炯, 896~971)의 <凌霄花>라는 시이다. 시인은 한여름 땡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어나는 능소화의 빛깔과 자태에 반한 모양이다. 그 빛깔이 치자물보다 더 진하다고 칭송하고 있다. 산들바람이 건듯 불면 나무 가득 달린 잎들이 흔들리는 모습도 사랑스럽고, 승천하는 용의 비늘처럼 뒤틀리며 하늘을 향해 뻗은 가지도 멋지다. 요즘 내가 보는 능소화가 꼭 그렇다.
능소화(凌霄花)는 하늘을 넘보는 꽃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니, 이름으로만 치자면 교만하기 그지없는 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이 꽃의 잘못이랴. 사람들이 이름을 그리 붙인 것뿐이다. 능소화는 넝쿨 식물이지만 바닥을 기지는 않는다. 반드시 무엇인가를 휘감고 위로 올라가는 것이 천성이다. 멀쩡한 나무를 휘감고 나무줄기 곳곳에 흡반 같은 뿌리를 박아 결국은 고사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랴. 조물주가 그리 만든 것이니 이 또한 능소화의 잘못은 아니다.
내게 능소화는 늘 박완서 선생의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을 떠올리게 한다. 거기 보면 능소화는 여주인공 현금이가 ‘메롱’ 하고 혓바닥을 내미는 모습과 같다고 표현했다. 어릴 때 우리 마을에도, 그 여자네 마을에도 능소화는 없었지만, 그 소설로 인하여 나는 꼭 그 여자네 담장 너머로 그 여자 혓바닥 같은 능소화가 피어 있었다는 착각을 오래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