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문예반에 들어갔던 나는 조금 별난 축이었습니다. 거기엔 아주 똑똑한 녀석이 한 명 있었는데(예전에 대통령 후보로도 나왔던 인물입니다), 나는 그 녀석의 잘난 척이 눈꼴시었습니다. 게다가 나는 되도 않는 글을 쓰거나 패러디를 즐기는 악취미를 가졌더랬습니다. 국어와 한문을 같이 가르치던 담임선생님은 한문을 잘하는 나를 한편으론 아꼈지만, 재주를 쓸데없는 곳에 쓴다고 또 한편 미워하셨답니다.(나중에, 공부를 아주 잘하던 친구에게서 들은 얘기입니다. 그땐 나를 미워하기만 하는 줄 알았지요.)
아무튼 오늘 새벽부터 내리는 눈을 바라보자니, 내가 한창 ‘문학에 대한 촉이 예민할 때’ 패러디했던 작품이 떠올라서 한번 웃어 주시라고 올려 봅니다. 원시(原詩)는 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김광림 시인의 <산>이라는 시입니다.
한여름에 들린
가야산
독경 소리
오늘은 철 늦은 서설이 내려
비로소 벙그는
매화 봉오리
눈 맞는
해인사
열두 암자를
오늘은 두루 한겨울
면벽한 노승 눈매에
미소가 돌아.
다음은 나의 패러디입니다. 당시에 우리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영화는 소림사를 무대로 한 중국 무협영화였음을 염두에 두어야 나의 패러디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젊은 분들은 아마 이해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여름에 들린
소림사
목탁 소리
오늘은 철 늦은 서설이 내려
비로소 열리는
소림 통천문
눈 맞는
소림사
삼십 육방을
오늘은 두루 한겨울
면벽한 노승 눈매에
야마가 돌아.
* ‘소림통천문’과 ‘소림36방’은 모두 당시 유행하던 영화 제목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