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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분야의 전문가처럼

by 말상믿


"무언가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분야의 전문가처럼 행동하라" 아침 마라톤을 뛰면서 이 문장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침 일찍 바람도 불고 비 소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원천천에는 러너들이 많았다. 러닝을 뛰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오히려 비가 올 듯 말 듯 한 흐린 날씨가 러닝 하기 좋은 날이라는 것을.


투둑투둑 한 방울씩 떨어지는 빗방울이 오히려 나의 기분을 업 시켜주기에 충분하다. 뭔가 비를 맞고 뛰면 생동감이 더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러닝 나가기 전 비가 오면 나갈 마음을 붙잡지만, 러닝 하는 동안 비가 오면 마음에 이상한 동요가 일어난다. 평소에는 러너들을 만나도 각자 한 사람으로 뛴다는 생각이 드는데 비 오는 날뛰고 있는 러너들에게는 왠지 모를 동질감마저 든다.


7월 중순. 엊그제까지만 해도 40도에 육박한 무더위에 혀를 내두르곤 했다. 그럼에도 원천천의 자연은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얼마 전까지 피어있던 화사한 꽃들은 언제 피었는지도 모르게 꽃씨를 달고 있고 잘려 나갔던 풀들도 자신의 역량을 과시하듯 또 내 키만큼 자랐다. 어제 내린 비로 풀들은 더 싱그러워졌고 초록의 자연은 생명력이 넘친다.


자연은 초보가 없는 것 같다.

이름도 모를 하잘것없는 풀과 야생화도 모두 제 몫을 하면서 자신의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빛을 내고 있다.


얼마 후면 이곳을 관리하는 분들에 의해 또 잘려나갈 풀들이지만 비를 맞은 초록의 풀이 꽃잎 없이도 이렇게 예쁠 수가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마라톤 10km를 다 뛸 때까지 비는 오지 않았다. 이제 마라톤 10km는 나의 체력으로 힘들이지 않게 뛸 수 있어서 인지 마라톤을 뛰는 동안 자연에 심취해 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원앙이 새끼를 낳았다. 오늘은 원앙 가족이 보인다. 어미 한 마리에 새끼 두 마리. 무엇이든 새 생명은 아름답고 귀하다. 어미 뒤를 따르며 물길을 가르는 원앙 새끼에 눈이 가 뛰는 걸음을 멈추고 싶었지만 멈추면 뛰기 싫어질 것 같아 그냥 뛰었다.


마라톤을 뛰면서 왜 처음 문장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을까?

"무언가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분야의 전문가처럼 행동하라"


마라톤을 뛰다 보면 글을 쓰고 싶은 소재가 연실 떠오를 때가 있다. 물론 마라톤을 다 뛰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떠올랐던 생각들은 금방 잊힌다. 떠오르는 생각을 순간 붙들지 않으면 금세 없던 이야기가 된다.


오늘 역시 이 문장이 머리에 계속 맴돌았다는 것은 나의 마음 어딘가에 어떤 생각이 와닿았다는 것일 텐데. 이 글을 쓰는 내내 문장만 되새겨 질뿐 어떤 글도 떠오르지 않는다.


어떤 생각이 나의 마음에 와닿았을까? 모르겠다.

지난 월요일에도 마라톤을 뛰면서 순간 생각나는 것들을 글로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붙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얼른 10km를 뛰고 기억을 붙들어 글을 쓰자 했건만 마라톤을 뛰면서 했던 생각은 마라톤이 끝남과 동시에 정말 깨끗이 잊힌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마라톤을 뛰면서 생각을 바로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바로바로 생각나는 대로 녹음을 한다든지.

잠시 멈춰 글을 쓰고 다시 달린다든지(그런데 멈추기는 싫다.) 떠오르는 단상들을 잊히지 않고 글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무색해진다.


요즘 나의 일상은 글을 쓰는 일에 집중되어가고 있다. 어쩌면 마라톤을 뛰고 싶은 이유가 글을 쓰고 싶은 소재가 떠오르기도 하고 뛰면서 느끼는 이런저런 사색이 좋아서인지도 모른다. 딱 그것 때문이라고 할 수 없지만 상당 부분 마라톤을 뛸 때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단상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집에서 글을 쓸 때와는 다른 느낌을 받는다. 자연의 변화가 그런 사색을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나는 소설 쓰기의 많을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자연스럽게, 육체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 얼마만큼, 어디까지 나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면 좋을 것인가? 얼마만큼의 휴양이 정당하고 어디서부터가 지나친 휴식이 되는가? 어디까지가 타당한 일관성이고 어디서부터가 편협함이 되는가? 얼마만큼 외부의 풍경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얼마만큼 내부에 깊이 집중하면 좋은가? 얼마만큼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고, 얼마만큼 자신을 의심하면 좋은가? 만약 내가 소설가가 되었을 때 작정하고 장거리를 달리기 시작하지 않았다면, 내가 쓰고 있는 작품은 전에 내가 쓴 작품과는 적지 않게 다른 작품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라고 말했다.


매일 장거리를 달리면서 글을 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을까? 그 대단한 작가의 책을 읽고 갑자기 흉내 내고 싶었을까? 그게 뭐라도 좋다. 이 책을 읽고 마라톤이 더 좋아졌고 마라톤을 뛰면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내가 좋다.


지금은 10km를 뛰면서 느끼는 생각이지만 풀코스를 뛰면서 느끼는 생각은 또 다를 것이다. 그런 경험도 빠른 시일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대단한 작가가 매일 뛰면서 느꼈을 기분을 작게라도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었나 보다.


"무언가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분야의 전문가처럼 행동하라" 이 문장이 머릿속에 맴돌았던 이유가 여기 있었나 보다. 마라톤을 뛰면서 작게나마 흉내 내고 싶은 마음이 이 문장을 불러온 게 아닐까?


매일 장거리를 뛰면서 마라톤을 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 뛰면서 드는 생각을 어떻게 붙잡아 글로 썼을까? 누구든 자신만의 사색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던데 지금 나에게 마라톤은 어떤 사색을 주는가?


뛰면서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마음에 두고 뛰었나 보다. 몇 달 전 읽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갑자기 내 마음속에 소환된 것은 왜였을까?


날씨 탓인가? 그래도 이런 날 누군가를 생각하며 사색하고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
"오늘도 성장"
- 말상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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