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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Feb 09. 2022

가을05-대기 중

대기 중 


대기 중 1


“이 시국에 병원 가는 것도 찝찝한데 위내시경까지 받아야 돼? 나중에 하지.”

“그래도 몇 년 됐는데 받으세요. 나 방학 때나 편히 병원 가지.”     


  8월 개학 전에 둘이 같이 건강검진을 받았다. 내시경 검사를 미루고 싶다는 엄마에게 그럼 대장은 빼고 위 검사만, 비수면은 무서워하시니 수면 내시경을 하는 것으로 타협하고 신청해 드렸다. 그런데 수면 내시경 전 심전도에서 이상 징후 발견. 의사가 엄마 심장에 이상이 있는 것 같으니 대학병원에 가 보라며 소견서를 써준다. 순간 마음이 덜컹. 일단 집에서 가까운 아주대 병원에 전화를 해봤는데 하필 코로나 때문에 의사들이 파업한 시기였다. 아예 새로운 환자 예약을 받지 않는단다. 그다음에 찾은 곳이 동탄 한림대병원. 다행히 접수가 가능해서 제일 빠른 날짜로 예약을 한 것이 9월이었다.     


“부정맥이 있으시네요. 심장비대 그러니까 심장이 커진 거예요. 가장 큰 원인은 노화고,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잘 생깁니다. 걱정할 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시고요. 약 드시면서 꾸준히 진료받아보시죠.”

“수술을 받아서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모든 증상을 다 수술하는 건 아닙니다. 수술한다고 해도 또 재발할 수도 있고요. 어머님 상태에서는 약 드시는 게 좋아요.”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니 무서워 그러지요.”     


  아주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니 천만다행이다. 엄마는 수술이라도 해서 후딱 치료를 끝내버리고 싶으신 모양인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혈전 생성의 위험이 있어 뇌졸중 예방 치료가 필요하다 했고 약 처방을 받았다. 1달간 약 먹고 재검진. 심전도, 심장초음파 등 검사를 하고 진료실에 들어섰다.    

 

“약 드시면서 뭐 크게 불편한 것은 없으시죠?”

“네. 그런데 얼굴에 뭔가 기어가는 느낌도 들고, 손가락도 좀 꼬이는 것 같고, 밤에 다리에 쥐도 잘 나는데 이건 왜 그래요?”

“지금 드시는 약하고는 상관없는 증상인데… 그러면 오늘 진료 가능한 신경과 선생님 연결해 드릴게요. 진료 한 번 받아 보세요.”     


  결국 신경과 진료도 받아 보기로 했다. 갑작스레 추가된 진료라 대기 시간이 꽤 길다. 간호사분께 물어보니 최소한 한 시간 반은 더 기다려야 할 거란다.     


“엄마, 오래 걸릴 거라는데 요 앞에라도 나갔다 올까?”

“그래 병원 안에 있기 갑갑하다.”     


  사람 많은 병원에 오래 있기도 찝찝해서 병원 주변 공원을 검색해 보고는,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대학병원 진료라는 사실 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마음에 부담이 생기는데 대기 시간마저 길어지니 가만히 앉아있으면 불안감만 커질 것 같은 이유도 있었다. 다행히 근처에 걸을 만한 곳이 있어 야트막한 산을 올랐다.     


“사람도 없고, 공기도 좋고, 약 냄새나는 병원에 앉아있는 것보다 훨씬 낫네.”

“그러게. 저쪽으로 넘어가면 다시 병원으로 가는 거 같아요. 그럼 시간 딱 맞을 것 같아.”


  부스럭. 갑자기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난다. 사람이 없는 곳이라 뭔가 하고 바라보니 고라니와 눈이 마주친다.(사실 노루랑 고라니가 구분이 안돼서 사진을 한참 검색해 봤는데... 아무래도 고라니인 것 같다.) 

    

“엄마, 저기!”

“어머, 쟨 도망도 안 가고 우릴 보네.”     


  그렇게 3초쯤? 고라니는 우릴 바라보다가 사라졌다. 어릴 때 본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산속에서 고라니를 만난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병원 진료 대기 중이라는, 엄마가 어디 크게 아픈 거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엄마랑 고라니 목격담을 나누기 바빠졌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꼬맹이에게 저쪽에 가면 고라니 볼 수 있다며 자랑까지 하고 하산했다. 병원에 돌아와 신경과 진료를 하고, MRI 검사를 예약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맑은 하늘, 홀연히 나타나 우리의 근심 걱정을 뒷발로 차버려 준 고라니에게 감사했던 하루.


대기 중 2


  코로나 덕분에 조회는 원격으로 하고 오전 수업만 바꾸고 검사를 하러 갈 수 있었다. 10년 넘게 담임하면서 조회, 수업, 종례 때문에 지각이나 조퇴를 해 본 적이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하자면 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조회를 부탁해야 하고, 그 와중에도 애들, 학부모들 연락은 받아서 전달해야 하고 여러모로 불편해서 시험 때가 아닌 평일에 내 시간을 빼본 적이 없다. (주변을 보니 요즘은 잘 들 하기는 하더라만 서도… 난 맘이 편치 않았다. 내가 날 볶는 거지 뭐. --;) 아무튼, 여지껏 코로나 탓만 했는데 좋은 점도 있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엄마가 검사를 받는 동안 검사실 밖 의자에서 검사가 끝나길 기다린다. 괜히 가만히 있기 불안해지는 마음을 다독이려 펜을 들어 그림을 끄적여본다. 별일 없기를 기도하며.

  이날은 검사만 받고 귀가, 난 학교로 복귀.     

  며칠 후 주말에 다시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다.     


“다행히 혈관 쪽으로 큰 이상은 없으세요. 오히려 연세에 비해 혈관은 깨끗한 편이시네요.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아요. 치매 에방 차원에서 나중에 건망증 심해지는 것 같으면 인지 검사 받으시면 좋겠네요.”

“네, 감사합니다.”     


  혹시나 하고 맘 졸였는데 별 탈 없다고 하니 다행이다. 다리에 쥐 나는 건 영양제와 꾸준한 스트레칭으로 해결해 보기로 하고, 엄마 머리 쓸 일을 많이 만들어드려야지 싶다. 교회에서 성경 구절 암기를 하시는데 열심히 응원해 드려야겠다.

  그나저나 병원에서 무리한 운동은 자제하란다. 하루 4000보 정도 가벼운 걷기가 딱 적당하다고, 그것도 산을 오르기보다는 평지를 걷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제 심심하면 오르던 뒷산을 포기하고 새로운 산책 코스를 개발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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