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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성 Mar 21. 2024

너와 나의 스포트라이트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

 아이가 커가면서 부모와 노는 시간보다 따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늘어간다. 어느덧 유치원 최고 형님이 된 아들이 태권도를 보내달라고 조른다. 친구들과 동생들이 태권도 발차기를 하면 부럽다고 얘기했지만 또래보다 체력이 조금 떨어지는 아이를 바로 태권도장에 보내긴 조심스러웠다. 동네에 있는 태권도 몇 군데를 방문하고, 관장님들과 상의한 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로 약속을 했다. 적당한 날을 잡아 우선 체험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 간 태권도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유치부와 초등부로 나뉘어 있었고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로 또 나누어져 있었다. 서로 섞이지 않게 하려는 듯 보였다.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우리 아이는 유치부 그것도 맨 앞자리를 배정받았다. 처음 도장에 가서 한 일은 양말을 벗고 얌전히 앉아 있는 것이었는데 설레는 마음이 느껴질 정도로 초집중이다. 관장 선생님은 그런 아이에게 이름은 뭐니? 태권도 배우고 싶었니? 와 잘한다를 연신 내뱉으며 아이의 적응을 도왔다. 발차기 몇 번 한 후 줄넘기로 넘어간다. 줄넘기를 배운 적도 해본 적도 없기에 제자리 뛰기부터 시작한다. 곧잘 한다고 연신 칭찬을 해주시는 관장님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첫날 그렇게 마무리하고 집에 왔다. 칭찬스티커를 8개나 받았다. 첫날이라 잘했다는 말과 함께.


 "태권도 어땠어? 재미있었어?"

 "발차기~"

 대답대신 아빠를 발로 차고 주먹으로 찌른다. "하나도 안 아파"라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무한 발차기를 시작한다.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이라 그런지 오는 내내 신이 나있다. 다른 태권도장은 갈 필요도 없어졌다. 바로 등록했다. 체력을 감안해 일주일에 두 번 할 수 있도록 신청했다. 상황을 봐서 월, 수, 금으로 늘릴 예정이다. 일주일 내내 나가도 좋다. 아이가 재밌어 무엇이든 해주고 싶다.


 5시에 시작해서 5시 50분에 끝나는 스케줄을 잡았다. 4시 40분에 버스에서 아이를 픽업하고 공원을 가로질러 가면 5시 언저리에 도착한다. 이 시간에 태권도하는 아이들이 유독 많다. 많을 땐 40여 명이 넘고, 적을 땐 25명 남짓이다. 초등학교 마치고 온 아이, 유치원 마치고 온 아이로 북새통이다. 아이를 도장에 데려다 놓으면 시간이 애매하게 남는다. 집에 다녀오기도 애매하다. 날이 좋으면 주변을 산책하거나 공원을 걷는다. 가까운 청소년 센터 의자에 앉아 멍을 때리기도 하고 브런치를 보기도 한다. 대략 1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데리러 간다. 끝날 시간에 맞춰 태권도장에 도착하면 아이들은 마무리할 준비를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도장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타고 하원한다. 픽업하러 온 부모는 거의 없다. 나만 있을 때도 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면 관장님은 항상 우리 아이를 먼저 나가게 해 주신다. 센스도 좋다.


 비가 오는 오후였다.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 조금 일찍 도장에 도착했다. 도착해 보니 부모님들이 꽤 서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계신다. 비가 와서 차를 가지고 픽업을 오셨으리라. 어른들 틈새로 조심스레 우리 아이가 어디 있는지 살폈다. 제일 앞에서 열심히 발차기를 하고 있었다. 한눈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다른 아이들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내 아이만 눈에 들어왔다. 잘한다 내 새끼.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그때 아이가 뒤를 돌아본다. 분명 발차기에 초집중하던 아이, 하나에 몰두하면 이마에 땀이 나도록 집중하는 아이가 내가 온걸 어떻게 아는지 뒤를 돌아본다. 많은 학부모들 사이에서 딱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손을 흔든다. 소름이 돋았다. 얼떨결에 나도 흔들었다. 아들이 씨익 웃는다. 아빠도 씨익 웃는다. 너도 손을 흔들고 나도 손을 흔든다. 너도 웃고 나도 웃는다. 다시 씨익 웃는다. 나도 웃는다. 이 순간 우리 둘만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주변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세상에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직선으로 너와 내가 마주하던 그 순간 너와 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처럼 통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 어떤 이유로 서로 그 순간 마주 보며 웃은 것일까? 어떻게 주변 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왜 내 눈에는 온통 너만 보일까? 너도 나만 보였니? 사랑한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라'는 비트겐슈타인 말처럼 침묵 외에는 그 어떠한 설명도 부족하다.

 오늘도 너와의 짜릿한 교감이 신기하고 포근하다.



   


#다시태어나도너의아빠가되어줄게

#너와나의스포트라이트

#우리는서로어떤존재인가

#아빠육아

#아빠육아휴직

#아빠살림

#아빠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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