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은 건강검진을 하는 달이다.
잊지 않으려고 자체적으로 정한 달이다.
올해도 미리 예약을 해서 11월 초로 건강검진을 받았다.
평소와 같이 선택진료 2개를 정한 후 수면 내시경을 선택하여 검진을 완료했다.
그런데 예년과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위 내시경 후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는 곳이 아니라 검진 센터 바로 앞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원래 내시경 후 쉬는 곳은 저긴데, 난 왜 여기에 있지?'
정신 차리기가 무섭게 간호사님과 함께 다시 검진 센터 안으로 들어가고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헬리코박터 균이 조금 있어서 약을 드셔야 할 것 같고,
조직검사를 해야 하는데 1주일 뒤 연락이 없으면 괜찮으신 거고,
1주일 후 연락이 가면 바로 병원에 오셔야 합니다."
알겠다고 답을 했는지, 고개만 끄덕였는지 모르겠다.
1주일 뒤 연락이 오지 않기만을 바랐다.
공장 같은 건강검진센터에서 오고 가는 말은 군더더기가 없었고 빠르고 간단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찜찜했다.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날이었다.
아이 영유아 검진을 위해 병원을 가야 했고, 환절기라 사람이 많아 대기를 하고 있었다.
모르는 번호로 벨이 울렸다.
내일이라도 당장 병원에 와야 한다는 연락이었다.
어떻게 집으로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평소에도 위가 별로 좋지 않았고, 가끔 조직검사를 했던 적이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바로 병원에 와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멍했다.
'뭐부터 해야 하나? 뭘 정리를 해야 하는 건가?'
'병원에서 무엇 때문에 부르지?'
온갖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퇴근하는 아이 엄마에게 바로 상황을 알려주었고 우리 부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눈치가 빠른 아들은 평소보다 더 아양을 떨고 애교를 부린다.
그 모습에 웃고 있지만 눈물이 났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음날 7시까지 도착하려면 일찍 자야 하는데 손발이 떨려서 눈이 감기질 않았다.
네이버로 뜨는 유관 검색 키워드는 하나 같이 좋지 않은 단어들이었다.
"위가 많이 안 좋아지셔서 조직검사를 했는데 정상세포와 암세포 중간 어디쯤이라고 하네요.
가까운 병원에 가셔서 추적관찰 하셔야 합니다. 약을 꼭 드셔야 하고요."
내시경이 가능한 가까운 내과에 방문하여 상담을 받고 다시 내시경 검진을 예약했다.
위가 많이 안 좋아졌으니 앞으로는 조심하고 아껴서 써야 한다고 말한다.
위는 재생되지 않으니 절대로 자극적인 음식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날 이후 우리 가족 식단을 모두 바꿨다.
신선한 야채와 계란으로 아침을 먹었고,
인스턴트와 가공식품 양을 줄였으며,
인슐린 저항성을 높이기 위해 밥을 미리 해놓고 차갑게 식힌 후 살짝 데워 먹고,
가급적 바로 조리하고 천천히 먹고 있다.
간은 이전보다 더 슴슴하다.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생활비를 벌지 못하는 아빠 육아휴직자에게 경제적인 부분은 늘 고민이자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내시경 조식 검사 후 병원을 내원해야 한다는 전화를 받고 나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이제 겨우 6살 아들과 북적북적 살부비며 지내고 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가족을 위해 애쓴다고 했는데 정작 나는 내 몸 하나 아끼지 못했구나..
건강 앞에서 다른 무엇이 더 중요하단 말인가..
글로 미쳐 표현 못할 수만 가지 걱정과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내가 건강해야 가족이 건강하고, 가족이 건강해야 나도 건강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까끔 나에게 묻는다.
"아빠! 아빠는 언제 할아버지가 돼?"
"우리 아들이 결혼해서 아가를 낳으면 할아버지가 돼지~ "
"지환이가 아가 낳으면 할아버지가 된다고?"
"응.. 그럼 지환이는 아빠가 되고, 아빠는 할아버지가 돼지.. 그런데 왜?"
"아~ 그럼 지환이가 아가 낳으면 아빠가 길러줘~ 아빠가 길러주면 행복할 거 같아"
"응? 하하하.. 그래"
건강해야 한다.
할아버지가 되어 아들의 아가를 키워줄 때까지 건강해야 한다.
그게 내가 건강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