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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성 Aug 14. 2024

12화) 아빠도 아빠가 보고 싶다

아들은 커가면서 아빠의 모든 것이 궁금한 모양이다. 아빠 이름부터 나이, 무슨 일을 하며, 키와 몸무게는 어떤지 물어보기도 한다. 이름은 누가 지었으며, 자기랑 몇 살 차이가 나는지, 자기도 아빠만큼 키가 클지, 왜 그렇게 아빠는 뚱뚱한지를 묻는다. 아빠와 엄마는 언제 만났고 왜 결혼했고 어떻게 자신은 태어났는지도 물어본다. 그중에서도 남다른 호기심을 갖는 것이 있는데 바로 아빠와 자신의 신체적 차이에 대한 것이다. 다리에 털은 왜 나는지, 목젖은 왜 아빠한테만 있는지, 턱 밑에 수염은 왜 나는지, 엄마는 왜 수염이 없는지와 같은 많은 질문을 하곤 한다. 같이 샤워를 하는 날이면 질문은 쏟아진다. 묻고 웃고 장난치느라 씻기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다.




나는 쉬는 날도 예외 없이 매일 면도한다. 덥수룩하고 지저분한 모습을 아내와 아들에게 보여주기 싫어서다. 하지만 늦은 저녁에는 어쩔 수 없이 수염이 자란다. 어느 날 아들은 내 턱을 만지며 밤송이 같다고 웃는다. 손으로 만지기도 하고 손등으로 비비기도 한다. 얼굴을 가져다 대곤 뭐가 그렇게 재미나는지 웃다가 쓰러진다. 자기도 자라면 수염이 나느냐고 묻는다. 아마 자기는 대왕 수염이 자랄 거라고 큰 소리로 말하면서 깔깔댄다. 한참을 내 턱을 만지며 노는 아들을 보니 나도 아빠가 생각났다.


아빠는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한 전형적인 전후 세대다. 월남에 파병 다녀오셨지만 크게 자랑하지는 않으셨다. 항상 과묵했고 좀처럼 웃는 법이 없으셨다. 엄격했고 진지했다. 그래서 무섭기도 했다. 여느 아빠와 아들처럼 같이 있으면 서먹하고 서로 별다른 말없이 지내는 그런 사이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는 홍역을 앓았다. 몸은 축 늘어지고 얼굴부터 몸까지 붉은 발진이 시작됐다. 열이 올라 머리도 아팠다. 아빠는 나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셨다. 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아빠 목을 감싸며 힘껏 끌어안았다. 아빠의 어깨가 그렇게 넓은지 몰랐다. 두 손으로 아빠를 안을 때 턱밑을 스치면 까칠한 느낌이 났다. 따갑지만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죽을힘을 다해 아빠를 안았었다. 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하고, 주사를 맞고, 약을 타서 집으로 갔다. 아빠는 아파하는 나를 껴안고 괜찮다며 다독여줬다. 아빠 얼굴이 내 뺨에 닿을 때 수염 때문에 따가웠지만 포근하고 따뜻했다.


밤늦은 시간이었다. 자는 나와 누나를 깨우는 아빠의 소리에 눈을 겨우 뜬 겨울날. 아빠는 두 손 가득 통닭이며 과자를 들고 오셨다. 집안은 어느새 통닭 기름 냄새가 진동했고, 술을 거나하게 드신 아빠는 큰 소리로 웃으셨다. 평소 과묵한 아빠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무척 낯설었다. 검은 비닐봉지 속 종이에는 대자로 뻗은 통닭 두 마리가 누워 있었다. 저 녀석들을 빨리 먹고 다시 잠들고만 싶었다. 저녁밥도 먹었는데 통닭이 들어갈 배는 있었는지 누나와 나는 통닭을 금방 해치웠다. 성장하는 청소년에게 배불러서 못 먹는 음식이란 없다. 다 먹고 다시 잠을 자려던 나를 아빠는 까끌까끌한 턱으로 내 얼굴에 비벼댔다. 피부에 닿는 까칠한 느낌이 싫었다. 저녁 때 수염이 그렇게 많이 자라는지 미처 몰랐다. 술 냄새도 너무 싫었다. 술 마시고 친한 척하는 아빠가 싫었다.


갓 회사에 들어갈 즈음 아빠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회사 연차를 내고 아빠가 계신 병원으로 향했다. 말도 잘하지 못하는 아빠는 연신 거울을 보며 턱과 뺨을 만지고 있었다. 면도하지 못해 더 야위어 보였다. 아빠께 면도해드릴까요 묻자 아빠는 힘겹게 고개만 끄덕이셨다. 면도 거품도 없이 맨살에 날도 무딘 일회용 면도기로 힘겹게 면도를 해드렸다. 날이 제대로 안 들어 얼굴에 상처도 났다. 서걱서걱 소리와 울음을 삼키는 내 숨소리만 들렸다. 아프지 않냐고 재차 여쭤봤다. 아빠는 아프지 않다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아빠 숨소리가 더는 나지 않았다. 아빠와 나의 짧은 인연은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나는 아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사랑하지만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왠지 부끄러웠다. 아빠도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사랑하지만 그런 말씀을 하신다는 게 어려웠을 것이다. 아빠는 당신 아빠에게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아마 한 번도 없을 것이다.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없으니 사랑을 주는 방법도 몰랐을 것이다. 아빠는 무거운 나를 번쩍 업고 먼 병원까지 달려가도 분명 내 걱정만 했을 것이다. 아빠는 두 손 가득 무언가를 사 오며 분명 아들, 딸하고 몇 마디 나누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빠의 마음을 내가 아빠가 되어 보니 비로소 조금 알게 되었다.


사랑은 표현해야 하고 받은 만큼 사랑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나는 아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주는지 알지 못한다. 아빠는 내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렀고 서투른 채 영영 만나지 못하는 사이가 됐다. 아빠가 된 후 나는 아들에게 일부러 더 사랑한다고 말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랑한다고,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서로 장난치면서도 왜 그렇게 ‘장난을 거냐’는 아이의 물음에 엉뚱하게 ‘사랑해서, 사랑하니까’라고 답한다. 내가 이렇게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사랑했다고 말하지 못했던 아빠에 대한 부채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와 같은 부채 의식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아들은 다행히 애정 표현을 숨기지 않는다. 유치원에서도 아빠가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태권도 학원에서도 아빠가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자다가 깨서는 아빠가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난다고도 말한다. 세상에서 아빠를 가장 사랑한다고도 말한다.(물론 엄마랑 있을 땐 엄마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한다.) 일이 있어 엄마가 하원 마중을 가면 아빠는 어디 가고 엄마가 왔냐며 엄마를 서운하게 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아들이 더 아가였을 때 아빠가 출근하면 지하철까지 따라와 대성통곡을 했던 일도 있었다. 지하철 입구에서 괜스레 코가 시큰해지기도 했었다.



에리히 프롬은 말했다.

“어린아이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 받는다’는 원칙에 따른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난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도 사랑받는다고 생각한다.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아들이 필요하다고도 생각한다. 비록 돌아가신 아빠는 사랑 표현에는 서툴렀어도 지금의 나와 같은 생각이었으리라 확신한다. 내가 아닌 가족을 위해 애쓰고 헌신하는 일은 사랑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빠가 가족을 위해 남몰래 흘렸을 땀과 수고로움을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벌써 23년이 됐다. 오늘은 나도 아빠가 무척 보고 싶다. 까칠한 아빠 수염도 만져보고 싶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다시태어나도아빠가되겠습니다

#너를위한첫번째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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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육아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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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재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격주로 발행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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