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에는 자그마한 공원이 있다.
공원이 있어 좋은 점은 아이에게 계절감과 자연을 느끼게 해 줄 수 있어서다.
봄에는 파릇파릇한 새싹을, 여름에는 매미와 푸른 잎사귀,
가을에는 낙엽과 겨울에는 푸르른 소나무를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계절이 왜 바뀌는지
우리는 어떻게 나이가 들면서 성장하는지를 알려준다.
아이가 알아듣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함께 걷는 이 길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해도 좋다.
내가 바라는 건 이런 작은 기억 하나하나가 모여서
아빠와 아들이 갖는 감정의 교류가
마법의 복리처럼 쌓일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행복한 감정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단단해질 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날도 유치원 등원을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공원을 절반쯤은 가야 등원 버스가 선다.
우리 아이 또래 되는 아이와 엄마가 앞에 가고 있었고,
우리는 여느 때처럼 개미 구경과 왜 여름에도 나뭇잎이 바닥에 떨어지는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앞에 가던 아이 엄마가 걸음을 멈추고는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다.
지나가면서 듣기로는 출근해야 하는데, 자꾸 뭔가를 해달라고 한 거 같다.
짜증이 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한 두 마디 설득도 했을 것이다.
자그맣게 안된다고 타일렀을 것이다.
그러다가 폭발을 했다.
운동 나온 모든 사람이 쳐다본다.
아이 엄마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아이는 이미 울음바다가 되었다.
안타까웠다.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만 같았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 마음과는 다르게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짜증을 부리거나, 떼를 쓰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등등..
나도 아이에게 화를 낸 적이 있었다.
주로 장난감 마트에서다.
하나를 사면 더 사달라는 아들,
큰 장난감 또봇을, 카봇을, 알카봇을 더더 사달라는 아들..
그렇게 마트에서 망부석이 되고 울면서 떼쓰는 아들..
마트보다 쿠팡 같은 온라인에서 사는 게 싸다고 말해봐야
합리적인 소비가 무엇인지 알리가 없으니
할 수 있는 거라곤 울면서 떼쓰는 게 전부다.
그럴 땐 나도 모르게 화를 내면서 꾸짖는다.
그런 일이 있는 날이면 아이는 밤에 잠을 잘 자질 못한다.
꿈을 꾸며 잠꼬대를 하기 때문이다.
’아빠, 다음엔 꼭 사줘야 해‘
’아빠, 무섭게 말했어‘
’아빠, 빨간색 저거 꼭이야‘
’아빠, 아빠… 아.. 빠..‘
혼내고 달래서 괜찮아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의 마음속 상처는 꿈속에서도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얼마나 원하고 갖고 싶었는지 마트를 헤매고 있었고
그 순간 얼마나 아빠가 무서웠는지 꿈속에서도 울고 있었다.
그러다 나도 잠이 들었는데
내가 아들이 되는 꿈을 꾸었다.
정말 갖고 싶었던 장난감,
지금 사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가질 수 있다는 희망,
화내는 아빠의 무서운 얼굴,
안기고 싶은데 아무도 곁에 없는 것 같은 슬픔..
그런 감정을 느끼며 잠에서 깼고 다시 잠을 자지 못했다.
깨어나서 생각해 보니 아이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도 어릴 때 그러지 않았던가?
다 가질 수 없다는 것쯤 느낄 수 있지 않았던가?
말로 표현하지 못하지만 불안감과 두려움 같은 것 때문에 울지 않았던가?
세상 가장 소중한 엄마, 아빠가 무섭지 않았던가?
나는 그 후론 화를 잘 내지 않는다.
설득하고, 설명하고, 다른 대안을 제시한다.
10분이 걸린 적도 길게는 30분이 넘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타이르고 알려주는 날이면
나는 온몸이 피곤하고 정신적으로 힘들지만,
정작 아이는 행복하게 잔다.
’아빠, 팔꿈치..’
‘아빠, 등 긁어줘.’
아이는 나보고 더 성장하라고 한다.
지금보다 더 성숙하라고 한다.
자그마한 일에 화내지 말고,
소중한 감정에 상처 주지 말라고 한다.
언제든 품에 안길 수 있는 넉넉함을 가지라고 말한다.
언제나 사랑을 주라고 말한다.
나는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