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은 비교적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아침 6시 반이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전날 몇 시에 자던 일어나는 패턴은 비슷한데 아침에 아이를 깨우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
참 고마운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뽀뽀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게 처음에는 굉장히 부끄럽고 남사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몇 번 해보면 그냥 습관이 된다.
습관이 되니 일상이 되고 아들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랑한다며 뽀뽀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히려 다른 준비로 뽀뽀를 하지 못하는 경우 왜 안 하냐며 보채기까지 한다.
그럴 땐 만사 제쳐두고 뽀뽀하러 달려간다.
아침밥은 주로 과일을 먹는데,
방울토마토, 샤인머스캣, 사과, 감 등 제철 과일을 준비해 놓으면 맛있게 먹으면서 놀 준비를 한다.
등원까지는 거의 2시간이 남는데 이때부터 우리 가족의 아침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아침부터 책을 읽어준다.
오전 읽을 수 있는 양의 책을 미리 알려준다.
'오늘은 5권 읽자~'
'오늘은 7권 읽을 수 있겠다!'
'오늘은 3권 읽고 가자~'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책 권수를 미리 알려줘서 다 읽고 난 후의 뿌듯함을 느끼게 해 준다.
왜 책 읽을 권수를 미리 알려주는지는 아이의 성향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우리 아이의 경우 정해진 원칙, 지켜야 할 약속, 해야 할 일을 미리 알려주면 편안해한다.
다 읽고 나서 '최고!'라고 한마디 해주면 행복한 미소가 얼굴에 잔뜻 퍼져 있다.
책을 읽을 때는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읽는다.
누워도 좋고 앉아도 좋다. 서서 읽어도 좋고 뛰어다녀도 나는 책을 읽어준다.
그리고 책을 여기저기 밟히게 둔다.
책은 늘 가까이에 있고, 언제 어디서든 읽을 수 있고, 관심 있어하는 책은 언제든 볼 수 있게 하겠다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책을 아껴서 봐야 하고, 늘 정해진 곳에 꽂혀있어야 한다면
관리하는 부모 입장에서야 편하겠지만 그런 작은 불편한 기억이 오래도록 아이의 머리에 남을 거 같기 때문에 편하게 책을 본다는 원칙은 계속 지키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책들은 찢어지고, 낙서되어 있고, 정리도 안되어 있지만 그런들 어떤가?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책 읽어주는 아빠가 좋다며 행복해한다.
또 하나 책 읽어주는 원칙이 있는데,
목이 터져라 큰소리로 읽어주고, 영화 성우처럼 다양한 목소리로 읽어 주는 것이다.
다양한 캐릭터가 나오면 각각 다른 음성으로,
성별이 나누어지면 특히 남녀가 구분되게,
어떠한 액션이 나오는 문구가 나오면 더 오버스럽게 읽어준다.
그렇게 많게는 아침에 10권이 넘는 책을 읽을 때가 있는데 그럴 경우 어김없이 목이 쉰다.
유치원 등원 버스를 태우고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목캔디를 사는 이유다.
이렇게 4살부터 6살 현재까지 매일 아침 책을 읽어보니 몇 가지 변화가 눈에 띄웠다.
첫째, 영상 매체를 절대 찾지 않는다.
우리 집도 어쩔 수 없이 유튜브로 아이가 좋아하는 레고나 자동차 영상을 보여준다.
그럴 때면 하나만 더 보자며 계속 조르는데 아침엔 그런 일이 없다.
TV를 틀 일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핸드폰은 쳐다도 보지 않는다.
둘째, 미리 책 읽을 권수를 정하고 다 읽고 난 후 스스로 만족감을 느낀다.
시간이 임박해 정해진 책을 다 읽지 못하는 경우 불안한다.
그래서 두꺼운 책을 고르는 경우(예를 들어 'why 시리즈)는 일부러 빨리 스킵해 넘어가되 책을 다 읽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잘은 모르지만 하루하루 성과를 내면서 스스로 자존감이 많이 길러지는 것 같다.
셋째, 책 중간중간 자기가 이야기 스토리를 만들고 얘기한다.
나는 책을 읽어주며 아이가 중간에 말을 자르는 것에 개의치 않고 다 들어준다.
그러면 아이는 스토리를 기억해 내서 그대로 얘기하거나, 다른 책에 있던 내용과 연결하거나, 전혀 다른 이야기 전개로 놀라게 한 적이 많다.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과 연결하거나, 전혀 기억에도 없는 옛날 일들과 연결하거나,
꿈꾸었던 일과 연결하여 스토리를 만든다.
기발하고 신기할 때가 많다.
넷째, 책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책을 특별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장난감처럼 대한다.
그렇기에 기찻길이라고 책을 늘어뜨려 놓아도, 탑이라고 쌓아도, 던지기 놀이를 해도 괜찮다. 그만큼 친근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다섯 재, 한글을 가르치지 않아도 글자에 흥미를 보인다.
유치원에서 배우는 한글 외에 집에서 따로 한글을 가르치지 않아도 자주 반복되는 쉬운 한글부터 호기심을 갖는다. 특히 의성어를 좋아하고 알려주면 잊어버리지 않는다.
이 또한 다른 말과 연결해서 장난을 친다. 그러면 같이 웃는다.
여섯째, 아빠와 더 친해진다.
세상에서 아빠가 가장 좋단다.
매일 아침 책 읽어 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컨디션에 따라, 아이 상태에 따라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도 많다.
읽어주는 부모의 컨디션도 상당히 영향을 받는다. 영화배우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루만 이렇게 해보고,
그것이 반복되어 습관으로 자리 잡으면 하루 시작의 루틴이 되어 안 하면 뭔가 허전하다.
그래서 늘 우리 집 아침은 액션 만화 소리가 들린다.
아빠가 묵직한 목소리로 이런저런 책읽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목이 쉬어 목캔디를 먹어도 뭐 어떤가?
아이의 기억 속엔 소중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이 남을 것임엔 분명하다.
그것도 매일매일..
그렇게 행복하고 충만한 기분으로 유치원을 향해 가고 하루를 시작한다.
행복한 기억은 분명 복리처럼 쌓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