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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우주인 Sep 24. 2021

나는 왜 나쁜 것만 기억할까?

나쁜 기억은 좋은 기억까지 다 집어삼킨다.



"니 애비는 미국에 있다고 해라. "


1986년과 1987년. 그 두 해는 유일하게 내가 거의 모든 것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행복했던 유년시절이다.

 

외갓집에 살았었고 전라남도 화순의 요셉 유치원에 다녔다. 일 년 뒤에는 빨간색 체크무늬 위에 달타냥이 그려진 가방을 메고 화순 국민학교의 1학년 1반에 입학했다. 같은 반 남자애를 혼자 짝사랑했다. 오빠와 함께 배우면 피아노 강습비를 할인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엄마에게 떠밀려 처음 피아노 건반 위에 손가락을 올리는 법을 배웠다.


외할아버지를 위해 다리 마사지를 선사하면서 최진희의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를 기깔나게 부르는 멀티 타스크 능력을 연마했다. 그로 인해 앉은자리에 풀도 안 날 만큼 동네에서 자린고비로 유명한 외할아버지의 총애를 받았고, 할아버지가 장에 가서 직접 사 주신 학이 그려진 청빛의 밥그릇을 획득했다.

 

외갓집은 대중목욕탕을 했다. 1987년에는 목욕비가 950원이었다. 외가의 목욕탕 카운터에서 앉아서 1000원을 들이미는 손님들에게 인삼 비누의 종이 상자에서 50원을 꺼내 거스름돈을 주는 일을 했다. 목욕비에 포함되지 않은 물을 이용하여 빨래를 하고, 한증막 안에 빨래 금지라고 적혀있는 사인 바로 밑에 아랑곳하지 않고 빨래를 널어놓는 아줌마들을 외할머니에게 고발했다. 그것은 나의 중대한 임무였다. 카운터와 목욕탕을 넘나들며 내 임무를 유독 잘 이행하는 날마다 딸기 우유 한 팩을 포상받기도 했다.  


아빠는 외할머니에겐 남에  귀한 딸을 보따리 싸서 야반도주하게 했던 죽일 놈이었다. 심지어 그 죽일 놈은 처자식을 데리고 처갓집에서 빌붙어서 고시공부를 했다. 외갓집 마당  구석에 자리 잡은 부엌만 딸린 작은 방에서  먹는 시간 외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 죽일 놈은  누구도 뛰어넘을  없는 초강력 카리스마를 지닌 할머니의 기세에 눌려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가족을 부양할 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그 죽일 놈은 힘이 없었고, 2 동안 우리 가족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유로 외갓집에 살던  2년은 내게 가장 행복했던 유년시절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상황과 능력에 따라 사람이 받는 대우는 달라진다.


개천에서  용이었던 아빠는 하루아침에 처갓집에서 식솔들과 더부살이를 하는 죽일 놈이자 빌어먹을 놈이며 동시에 문딩이 같은 놈으로 지위가 추락했다. 그래서 가슴에 칼을 품고 공부했다. 가끔씩 그런 문딩이 같은 놈이랑 결혼한 엄마를 보며 화가 치민 할머니와 엄마의 푸닥거리가 시작될 때마다, 아빠와 판화 같이  닮은 얼굴을 가진 내게 화살이 돌아오기도 했다. 할머니는 남부끄러워서 동네에서는 존재가 없는 사람이어야 하는 아빠에 대해 누가 내게 물으면  


"니 애비는 미국에 있다고 해라. "


며 나를 단속시켰다. 할머니의 세뇌에 의해서 인지 모르지만 그는 그때를 기점으로 내 기억 속에서 미국으로 떠나버리고 돌아오지 못했다.


내가 낳은 아이가 내게  그 대한 질문으로 인해 열려버린 기억의 상자. 상자 속의 미국으로 사라졌다가 갑자기 돌아온 그 대한 감정과 기억 때문에   이루는 날들이 하루 이틀 늘어갔다. 하루에도  번씩 숨이 막혀 일상생활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결혼을 하고 자식까지 낳으니 그  이해할 수가 없다. 거울을 볼 때마다 그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또 다른 내가 나를 들여다보며 말한다.'넌 나를 잃어버릴 수 없어' 이 모든 것은 모두 나의 잘못이 아니다. 그저 매일 나의 하루를 흔들어놓는 그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


기억과 감정 편집을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다.


아빠와 관련된 좋았던 기억들을 짜내고 짜내서 꺼내서 요약 나열했다.


나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짜파게티보다 짜짜로니가 더 맛있다는 신념을 가졌다. 짜짜로니를 광고하던 티브이 속의 이경규 아저씨처럼 "자연스럽게~"를 흉내 내며 짜짜로니를 맛있게 끓이는 비법을 전수해주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었던 밀크셰이크를 사준 사람도 그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짝사랑에 빠져서 혼란스러웠던 나의 연애관을 성립해 준 명작! 들이대지 않고 왕자님을 기다리는 법이 담긴 백설공주 책도 선물해 주었다.


민주화 항쟁이 전국을 집어삼켰던 1987년이다. 외갓집이었던 화순에서 광주로 온 가족이 나들이를 가던 날이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 마주친 시위대와 경찰들의 대치 현장에서 최루탄이 우리 가족을 덮쳤다. 그는 최루탄 가루에 때문에 눈물범벅이 된 내 눈에 물수건을 얹은 후, 나를 품에 꼭 안고 뛰어서 인파 속을 빠져나왔다.


그는 퇴근길에 자주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인 처갓집 양념통닭을 자주 사들고 집으로 왔다. 1988년도에 서울 올림픽이 열렸을 때 우리 남매를 최대한 많이 올림픽에 대한 추억을 쌓아 주려고 많은 경기를 함께 보러 다녔다. 상인 집안이었던 외갓집의 문화 때문에, 경제적인 보상이 없는 활동이나 직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엄마와 내가 부딪힐 때마다 내 편이 되어주기도 했다.


유년시절의 기억 속에서 버려져 휴지통에 있다가 복원된 기억의 파일을 차근차근 열어 확인하다 보니, 그에 대한 기억들이 모두 다 나쁜 것은 아니었다. 이 세상엔 완벽하게 나쁜 사람도, 완전히 착한 사람도 없다. 그저 그가 어둠의 왕국 대마왕의 영향력을 행사할 때마다 내가 저장한 나쁜 기억들이 좋은 기억들까지 집어삼켜 버렸던 것이다. 


나는 왜 나쁜 것만 더 잘 기억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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