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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우주인 Oct 12. 2022

아이들은 학원을 좋아했다

네모의 꿈

초등학교 1학년은 학교가 너무 일찍 끝난다. 엄마는 엉덩이 붙일 틈이 없다. 아침 아홉 시가 되기 직전에 둘째를 어린이 집에 등원시키고 첫째를 학교에 등교시킨다.  집안에 가득한 아이들의 흔적을 정리하고  , 스마트폰과 함께 스마트한 활동을 하다 보면 첫째를 데리러 학교에 가야  시간이다. 다행스럽게도 어린이집과 학교가 친정집 바로 코앞이고 대한민국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은 밥은  먹여서 아이들을 집에 돌려보내니 점심 준비는  해도 된다.  하지만 12시가 조금 넘으면 집으로 돌아오는 초등학생과 함께 보내는 하루가 참으로 길다.


"태권도를 보내야지. "


동갑내기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친구가 내게 살며시 귀띔을 해준다.


"아들이 에너지 넘치는 태권도 선생님을 만나면 엄마의 하루가 얼마나 편한지 아니? 한국은 학원에서 아이들을 학교에서 바로 픽업을 해줘. 애들이 태권도에 가서 차고 넘치는 에너지를 소비하니 엄마를 좀 덜 괴롭혀. 너는 잠시라도 숨 돌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야. 남자애들한테는 태권도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애들한테 기 다 빨려서 마른 장작 되기 전에 당장 태권도 보내!"


세상은 진정 아는 만큼 보인다. 정정한다.  눈엔 관심이 생기는 것들만 보인다. 그전에 전혀 보이지 않던 태권도 선생님들이 학교 교문 앞에 여럿 보인다. 며칠 동안 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픽업하는 태권도 도복을 입으신 태권도 선생님들을 관찰한다. 유독 많은 숫자의 아이들을 인솔해서 픽업하는 태권도 사범님  분이 레이다망에 걸렸다. 에너지가 지붕 뚫고 하이킥 하는 아이들에게 인기폭발인 태권도 학원 소속임이 분명하다. 나의 유난스러운 아들 둘에게   빨려서 마른 장작이 되기 전에 SOS 구조대에게 태권도 사범님께 구조를 요청했다.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아들 둘을 태권도에 보내고 싶습니다."


아들 엄마 구조 전문가 사부님 손에 이끌려 학원에서 제공하는 이틀 동안의 무료 태권도 수업을 체험하고 나니 아이들이 더욱 적극적이다.


"엄마 태권도 학원 다니고 싶어요. "


아이 둘 다 실내 활동이 많은 한국 생활이 너무 지루하다. 온몸과 마음이 간지러운 아이들은 에너지를 뿜 뿜 자랑하고, 층간 소음 걱정 없이 마음껏 소리 지르고 뛰어놀 수 있는 태권도 학원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바로 등록! 아들 둘을 함께 등록해서 1만 원의 형제 할인 혜택까지 받았다.


"엄마 태권도 정말 재밌어. 너무 좋아. "


새하얀 태권도 도복을 입은 아이들이 내 눈에도 꽤 멋져 보인다. 유독 태권도 도복을 입는 것을 좋아하는 둘째는 태권도 도복을 입고 기상해서, 어린이 집과 태권도 학원을 가고, 태권도 도복을 입은 채 잠이 드는 날이 많다.


"태권도가 그렇게 좋아? 뭐가 제일 좋아?


"사부님이 어린이집에 나를 데리러 오는 거."


호주에는 없는 한국 학원의 픽업 서비스를 받는 것이 좋다는 둘째처럼, 첫째도 학교 끝나면 교문 앞에서 친구들과 줄줄이 줄을 맞추어 선생님의 지휘 하에 태권도 학원에 가는 것이 제일 좋다고 했다.




시드니 우리 집에는 전자 피아노가 있다. 유독 심심하고 할 일이 없는 호주의 겨울에 나는 가끔씩 전자 피아노를 연주한다. 엄마의 연주를 듣다가 첫째는 자주 피아노 건반을 누른다.


"예쁜 소리가 나는 게 좋아. "


첫째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합리적인 가격대의 음악 교실이 있긴 하지만 기타와 드럼뿐 피아노 교실은 없다. 동네 피아노 교실은 보통 30 1 수업에 $65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가격이  부담스럽다. 1 전이다. 30 1 수업에 $25 상대적으로 저렴한 한인 교회에서 운영하는 피아노 클래스의 웨이팅 리스트에 첫째의 이름을 올렸다. 30분이나 운전해서 가야 하는 거리이지만 언제 피아노 교습을 시작할  있을지는 기약이 없었다.


그래서 한국에 오자마자 내가 맨 처음 알아본 것은 첫째가 다닐 피아노 학원이었다. 친정엄마가 적극 추천하는 동네에서 소문이 자자한 피아노 학원에 아이들과 방문했다. 자칭 못된 호랑이 할머니인 피아노 선생님은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고 소개로만 원생을 맞이한다. 때문에 나는 직접 내 아이를 선생님께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기습 방문에 허를 찔린 피아노 선생님은 나의 구구절절한 사연에 마음을 열고 첫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소문대로 엄격한 호랑이 선생님의 활약으로 아이는 한 달 후 양손으로 피아노를 치고 악보를 읽는다. 악보 읽는 법을 배울 때 악보의 계이름을 한글로 쓰는 호랑이 선생님의 교습 방법 덕에 아이는 ‘도레미파솔라시도’를 한글로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어릴 적 명절 때마다 보던 고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제가를 아이들과 유튜브로 보며 함께 도레미 송을 불렀다.




우리는 한국에 한국어 어학연수를 왔다. 하지만 나는 두 달이 다 되도록 한글을 떼지 못한 첫째의 한글 공부 때문에 고민이 꽤 많았다.


"당근"


내가 한국에서 제일 사랑하는 쇼핑몰인 당근 마켓에서 책을 구입하게 된 어느 날이다. 책을 픽업 가는 길에 한글 공부방 사인을 발견했다. 그것은 당근 신의 계시이자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의 동아줄이었다. 이것저것 재보고 알아볼 것도 없이 공부방의 문을 두드렸다. 첫째는 한국 연수 마지막 한 달 동안 일주일에 세 번씩 한글 공부방을 다녔다. 한글 선생님이 도대체 어떤 마법을 부렸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아이는 한국인 엄마의 소원이었던 한글떼기를 한글 공부방에서 2주 만에 성공했다. 엄마표 한글 교실과 달리 아이는 한글 공부방이 재미있다고 했다.


'수리수리 마수리' 능력이 탁월하신 대한민국 학원 선생님들 만세! 만세! 만세! 나는 지금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만세 삼창 중이다.  

 

초등학생인 첫째는 일주일에 다섯 번 태권도 학원에 가고 일주일에 세 번씩 한글 공부방과 피아노 학원에 간다. 학교는 싫은데 학원은 좋다고 한다. 둘째는 일주일에 다섯 번 어린이집과 태권도 학원에 간다. 어린이집과 태권도 학원이 모두 다 정말 정말 좋단다.


첫째가 하루에  곳의 학원을 가는 날의 나의 하루 일정은 대략 이러하다. 아이가 12시가  넘어서 학교가 끝나면 학교 앞에서 태권도 선생님이 바로 픽업을 한다. 믿을  없다. 오전 시간이 죄다 나만의 시간이다. 1 50분에 태권도가 끝나면 첫째를 픽업해서 동네 놀이터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함께 놀이를 한다. 때론 한글 공부방 숙제를 하기도 한다. 운수 좋은 , 아이는 슈퍼마켓에서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획득한다. 그리고 3 10분에 한글 공부방에 간다. 4시가 조금 넘어서 한글 공부방에서 첫째를 픽업하고 4 20분에 어린이 집과 태권도를 마친 둘째를 픽업한다. 태권도 학원 아래의 빵집에서 팥빵이나 팥빙수를 먹으며 아들 둘과 이야기를 나눈다. 4 50분에 첫째를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주고 6시쯤 데리러 간다.


핸드폰도 없고 한국말도 서툰 아이를 혼자 다니게 하는 것이 걱정돼서 함께 학원과 집을 돌고 돌다 보면 진이 빠진다. 오후 1시 50분부터 저녁 6시까지 약 4시간 동안 나는 엉덩이 붙일 틈이 없다. 하지만 엉덩이를 붙이지 못해도 엄마의 광대는 자연스럽게 승천한다.


아이스크림 하나만 사 먹으려 해도 운전을 하고 나가야 하는 불편한 외국에 살고 있다 보니, 한국어 연수 기간 동안 아이들의 지적&육체적 갈증을 해소해 주는 학원들을 방과 후 무리 없이 갈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만족스럽다. 한국의 사교육 컬리티는 말해 무엇할 것인가? 심지어 시드니에서는 학원 1곳을 보낼 수 있는 비용으로 한국에서는 3곳을 보낼 수 있으니 교육 퀄리티와 비용을 따져보자면 한국 사교육은 가성비면에서도 세계 최고이다. 학원들을 순방하는 중간중간 주전부리도 큰 비용 부담 없이 집 앞에서 할 수 있다. 우리 모두 한국의 학원 생활과 간식 생활에 즐거움이 컸다.





깜빡 잊을 뻔했다. 이제는 한국 사교육 체험의 클라이맥스를 찍어준 우리의 네모 존의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할 차례이다. 우리 집 그러니까 외할머니의 집을 기준으로 바로 길 건너가 학교, 그 학교 건너편이 태권도 학원과 어린이집,  태권도 학원 건너편에 피아노 학원과 한글 공부방이 자리 잡고 있다.

정사각형의 네모의 꿈! 우리는  네모 안에서 모든 것을   있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사각형의 꼭짓점은 태권도 학원이 자리 잡은 상가이다. 태권도 학원 상가에는 아이들의 간식 생활의 꽃인 빵집과 슈퍼마켓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시드니에서는 학교뿐 아니라 학원에 가기 위해 짧게는 10분에서 15, 길게는 30분에서 1시간 정도 운전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열이 높은 동양인이 많이 사는 지역에는 수요가 높아서 한국의 학원과 같은 개념의 학원들이 많이 존재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곳에도 한국 같은 픽업 서비스는 없다. 픽업은 바로 엄마의 몫이다. 그래서 풀타임 맞벌이를 하는 부모는 초등학교 저학년인 자녀가 다면 평일에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다른 가족들이 육아에 도움을 주는 경우는 제외한다.) 돌봄 서비스는 비싼 인건비 때문에 보편적이지 않다. 학원은 보통 주말에 몰아서 보낸다. 호주에서 자라는 남자아이들에겐 스포츠는 공부만큼 중요하다. 특히 교우관계에 스포츠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리하여 아들 엄마들은 주말에는 애들 운동시키는 것만으로도 바테리가 방전되는 운전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 


시드니에 돌아온 뒤, 웨이팅 리스트에 있었던 한인 교회 피아노 교실에 자리가 생겼다. 그래서 우리는 매주 주말마다 피아노, 수영, 럭비, 크리켓 교습을 받으러 학원 로드트립을 떠난다. 가끔 교통 체증에 갇혀 30분짜리 수업에 늦어서 결석을 하게 될 때도 있다. 그렇게 허무하게 학원비가 공중에서 사라질 때마다 우리는 한 여름밤의 꿈같았던 한국의 네모 존을 떠올린다. 하교 후에 바로 갈 수 있는 학원들과 빵집, 그리고 슈퍼마켓을 품은 외할머니 집 앞의 네모의 꿈! 그 꿈은 정녕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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