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그렇게 생겼어?
“애들 머리 좀 잘라라” “애들 머리가 왜 그렇게 길어요? “
아들 둘 다 단발머리여서 한국에 온 후 가족들을 포함한 사람들에게 참 많이도 들었던 말이다. 남에 머리 길이에 뭐가 그리 관심이 많은지 모를 일이다. 관심은 말을 만들고,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도미노가 되어 돌고 돌다가 나비로 변신해서 어떤 효과를 만들기도 한다.
우리 가족은 시드니 동쪽 바닷가에 살고 있는데 동네엔 머리가 긴 남자들이 많다. 미용실 비용이 저렴하지 않으니 남자들이 집에서 셀프 헤어컷을 자주 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멋진 외모에 대한 기준이 다양하기 때문일 것 같기도 하다. 정반대의 문화에서 자란 외국인인 나로서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남자는 머리가 짧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거의 없다 보니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나 어린이집에도 머리가 짧은 남자아이보다는 머리가 긴 남자아이가 훨씬 더 많다. 내가 미용실에 가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부지런을 떨어 직접 머리를 잘라 주지 않으면 외국인 남편과 아이들의 헤어스타일은 자주 단발머리다.
그래서였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고 첫째가 "엄마 나 머리 짧게 자르고 싶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이유가...
단발머리 첫째에게서 한국생활의 위태로움이 느껴졌던 것은 한글떼기가 늦어져서 내가 직접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한 후부터였다. 아이는 빈방에 들어가서 자주 나오질 않았다.
"나 혼자 있을래”
하며 단절 메시지를 보낸다. 그리고 그 전에는 하지 않던 엄마를 염장 지르고, 약 올리고, 미치게 하는 행동들을 반복한다. 짜증내고, 소리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진다. 방문을 잠그고 방에 들어가서 도무지 나오지 않는다. 이유 없이 옆에 있는 동생을 괴롭힌다. 갑작스럽게 공격적으로 변신한 아이를 혼자 감당하자니 몸도 마음도 죄다 타 버릴 것 같았다. 한글 공부하라고 귀에 딱지 앉도록 이야기를 해서 그런가 싶어서 공부를 강요하는 것도 멈추었지만 아이는 더욱 내게서 멀어져만 간다.
"노아야 엄마한테 이야기 좀 해줘. 우리 노아가 왜 맨날 화가 나있지? "
아이가 울기 시작한다.
"애들이 나보고 여자라고 놀려요. 엄마 머리 짧게 잘라주세요. 남자처럼 머리 자를 거예요. "
전혀 예상치 못한 아이의 말에 '남자처럼 이라니? 네가 사는 세상엔 머리가 긴 남자가 짧은 남자보다 더 많잖니?' 할 뻔했지만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는 지금 머리가 길어서 놀림받았던 순간만을 생각한다. 우선은 아이를 달래준다. 아이의 긴 머리 사건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본다.
첫째의 외모는 아름답다. 내가 고슴도치 엄마라서가 아니다. 한국에 온 후엔 길을 걷다 보면 아이의 외모에 대한 칭찬을 자주 듣는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의 얼굴에 눈을 떼지 못한다. 외국에서 온 영어를 잘하는 왕자님 같은 외모를 가진 아이는 동급생 여자아이들에게도 상급생 여자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노아야! 안녕! “
동네를 다니다 보면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알은체를 하는 여자 아이들이 가득이다. 인기 폭발! 만찢남! 그래서였나보다. 남자아이들에게 왕자님 같은 외모를 가진 내 아이가 곱게 보이지만은 않았나 보다. 아이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잘생겼고, 이북 사투리 억양의 한국말을 한다.
"애들이 너는 왜 그렇게 생겼냐고 했어. 너는 왜 머리가 그렇게 기냐고 했어"
남다른 외모 때문에 쉬는 시간에 복도나 화장실에서 상급생들에게 놀림과 조롱을 들었단다. 한국 친구들에게 환영받지 못한 것 같아서 외롭다고도 했다. 친구가 없다는 외로움 덕에 생전 처음으로 삶이 힘들다는 감정을 배웠다고 했다. 이제 만 일곱 살인 아이는 삶이 외롭고 힘든 만큼 친구들이 더 절실하다고도 했다. 쉽게 마음을 열고, 누구와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고, 그래서 더 쉽게 상처받는 일곱 살 아이는 단지 또래 남자 친구들과 놀고 싶은 것뿐이다. 여자 친구들이 아니라...
"나는 항상 학교에서 서있어. 애들이랑 놀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서서 계속 돌아다녀. 계속 친구들한테 이야기해. 그런데 나는 친구가 없어. 나는 항상 서있는 사람이야. 나는 학교에 가서 있는 게 너무 불편해."
시드니 학교에서 아이는 친구들과 사이가 좋고 인기가 많다. 역시 피는 속일 수 없다. 입으로 하는 활동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제 아빠처럼 학교 수업시간에 발표하고 주목을 받는 것을 즐긴다. 또래 그룹에서 리더가 되어야 마음이 편하다. 엄마의 나라에 온 후, 가끔씩 말귀도 잘 못 알아듣고 자기 마음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바보가 되어 버린 아이는 한국 학교가 불편하다. 어눌한 한국말은 녀석을 느린 아이로 만들었고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소속의 욕구와 인정의 욕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한국 생활이 싫다. 또래 남자아이들 집단으로부터의 소외된 아이는 만만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에 오면 공격적으로 행동한다. 단지 다른 외모에 대한 몇 번의 놀림이 아이의 한국 생활의 불행감을 만드는 데에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인종이 함께 생활하는 시드니 학교에서는 단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었던 외모에 대한 공격이 도화선이 되어 아이는 울고 날뛰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개개인의 라이프 스타일과 패션 스타일이 존중받고, 물건을 아껴 쓰고, 다시 쓰고, 나눠 쓰는 것이 일반적인 문화권에서 살고 있다. 유행에 민감하고 의류에 꽤 많은 시간과 돈을 소비하는 문화에 살았던 한국인 엄마 덕에 우리 가족은 시드니 사람들에게 멋쟁이 가족으로 불린다. 그런 시드니 멋쟁이 가족이 한국에 오면 입을만한 변변한 옷가지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옷이나 옷값을 종종 선물 받는다. 그런 따뜻한 마음이 담긴 선물들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을 만큼 긴 외국 생활과 함께 나의 소비 패턴이 많이도 변했다.
하지만 단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나는 한국인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운동화만은 항상 새것을 사준다. 왠지 아이들 신발만은 꼭 새것을 사주고 싶다. 새 신발을 신고 바다와 숲이 지천인 온 동네를 뒹굴다 보면 아이들의 운동화들은 구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이 속도로 너덜너덜 해진다. 같은 이유로 비슷한 외모의 너덜너덜 표 운동화를 신고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한국에 와서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니 생각지도 못한 운동화 비극이 발생했다. 친구들이 가진 것들보다 현저히 낡아 보이는 자신의 운동화와 옷가지들이 섬세한 아이의 예민함을 제대로 건드렸던 것이다.
"나도 새 운동화 사줘. 나는 왜 새거 안 사줘."
한국인 엄마는 운동화만은 항상 새것을 사 주었지만 아이의 눈에는 현재 신고 있는 운동화의 상태만 보인다. 우선은 아이를 달래준다. 운동화 전쟁을 한바탕 한 다음날, 하교하는 아이들의 행렬을 자세히 살펴본다. 짧은 머리를 가진 한국 학교 아이들 사이에서 단발머리의 혼혈인 내 아이가 눈에 띄는 것처럼, 야외 활동이 많지 않은 한국 학교 아이들의 깨끗하고 새것처럼 보이는 운동화들 사이에서 내 아이가 신고 있는 운동화는 유독 더 낡고 초라해 보였다. 학교에 도착해서 운동화를 실내화로 갈아 신고, 브랜드 로고가 박힌 깔끔한 친구들의 운동화들이 쭈욱 진열되어있는 교실 앞 신발장을 보고선, 내 아이는 대체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 XX 초등학교 1학년 1반 28번 신발장 자리에 놓였을 아이의 낡은 운동화를 생각하니 살뜰하게 아이 마음을 챙기지 못했던 것에 미안한 마음뿐이다. 한국 초등학교를 다니고 난 후부터 아이가 그 존재조차도 모르던 나이키, 아디다스 등등 운동화 브랜드 이름을 들먹였던 것이 떠올라 씁쓸해진다.
살다 보면 전혀 예상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펼쳐지기도 한다. 한국에 어학연수를 오기 전에는 한국 학교 생활도 한글 공부도 정말 잘할 수 있다며 호언장담하던 첫째를 멀찌감치 재껴두고, 한국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둘째를 많이 염려했다. 하지만 어린 둘째는 스펀지처럼 한국말도 한국문화도 빠르게 흡수한다. 둘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같은 반에는 한국인 아빠와 서양인 엄마를 둔 비슷한 외모의 친구도 있었고, 둘째만큼은 아니지만 말이 느린 아이도 있었다. 그리고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은 친구의 다른 점을 알아차리고 편견을 갖거나 불편함을 느끼기엔 아직 어리다. 완전한 의사소통이 없어도 그저 함께 노는 것이 좋은 나이이다. 어린이집은 학교보다 적은 수의 아이들이 좁은 공간에서 긴 시간 동안 함께 지낸다. 그래서 선생님이 아이들의 놀이나 교우관계를 파악 하기도 수월하고 깊이 관여할 수 있다. 시드니에서 경험하지 못한 알찬 수업과 놀이, 소풍과 견학이 끊임없이 펼쳐지니 둘째는 한국 어린이집 생활이 좋기만 하다.
반면 하루아침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수업을 이해를 못 하며 한글도 제대로 읽지 못했던 첫째는 한국 학교 생활이 행복하지 않다. 또래 남자 친구를 만드는 어려움을 크게 한 번 터뜨린 후부턴 매일 밤 엄마 품에서 성내고 소리 지르고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든다.
“노아야 학교 재밌게 다니고 있다고 해서 엄마는 노아가 힘들었던 거 몰랐는데... 왜 말하지 않았어?
“엄마 기쁘게 해 주려고 그랬어. 엄마 슬픈 게 싫어서 말 안 했어.”
맛있는 학교 급식 이야기만 하고 이상하고도 수상하게 학교를 잘 다니던 아이는 결국 이렇게 엄마의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나는 자주 운다. YouTube를 보다가 우연히 클릭한 김연아의 금메달 퍼포먼스를 보고 갑작스럽게 국뽕에 푹 빠져 울고, 꽃을 파는 직장에서 어릴 적 보았던 꽃들을 만나면 유년시절에 추억이 떠올라서 운다. 나는 자주 찔끔 눈물을 흘리고, 가끔씩 엉엉 울면서 이방인의 서러움과 외로움을 견뎌낸다. 그래서 내 아이도 울보인가 보다. 엄마의 나라에 온 단발머리의 혼혈아 이방인은 눈물로 외로움을 견뎌내고 있다. 이방인인 엄마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완전하지 않은 언어를 구사하면서 외국인들의 사이에서 섞여 살면서 아무런 척하지도 않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내면의 자잘한 감정들을 외면하고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다리 같은 사람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를 말이다.
그저 내 아이와 같은 말을 말하고 같은 글자를 쓰고 싶은 내 욕심에 아이가 늦게 알아도 되는 것들을, 어쩌면 평생 모르고 살아도 되는 것들을 굳이 알게 해 준 것만 같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어쩌면 모두 다 틀린 것만 같다. 모래 위에 정성을 다해 위태로운 성을 쌓은 것인가? 엄마의 나라에 와서 이방인이 돼버린 내 아이 때문에 눈물을 찔끔거리다 보니 시드니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내 모습이 겹쳐져서 엉엉 울음이 난다.
낡은 운동화를 신은 단발머리 혼혈아 손자와 이 세상에서 제일 만만한 딸년의 푸닥거리를 모른 척하며 훔쳐 듣던 나의 엄마 영림 씨는 매일 기도 한다.
“우리 노아가 학교에서 적응 잘하고, 지 엄마한테 화내지 않고, 말 잘 듣게 해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