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마다 생리하는 게 싫어서 내가 여자인 게 억울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생리를 하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생리통을 견뎌야 하는 여자의 몸을 가지고 있어서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었다. 여전히 생리를 하고 생리통과 호르몬 과다 방출로 인하여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우리 동네 미친년이 된다. 하지만 금쪽같은 내 새끼들을 만난 이후로는 예전만큼 억울한 마음은 없다.
어느 날, 무기력 블랙홀에 빠진 우리 동네 미친년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점점 아득해지는 내가 낳은 아이들과의 한국어 불통에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나의 살던 고향에서의 한국어 어학연수를 결심했다. 그 세 달간의 시간 동안 나와 아이들은 대한민국과 미운 정, 고운 정을 단단히 쌓으며 울고 웃었다. 운전석 위치가 반대인 자동차, 다른 언어, 두 시간의 시차, 화려하게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 시드니와는 다른 공기와 문화에도 어느덧 익숙해질 쯤이다. 첫째는 한글을 떼었고 둘째는 한국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완벽하진 않지만 그럴듯한 존댓말을 배웠다. 그리고 아이들의 외할머니인 영림 씨는 아이들이 그리는 가족 그림 속의 새로운 가족 구성원으로 등장했다.
나는 애만보는 남편을 자주 얄미워했었다. 세 달 동안 혼자 애들을 보면서 애라도 봐줘서 고마운 마음을 비로소 마련했다. 아이들이 엄마의 나라에 대해서 알고 한국어로 소통하게 된 것처럼, 나 역시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소통하는 방법을 어렵게 터득했다. 몸이 아파도 참게 되는 느린 호주의 의료시스템 덕에 1년 365일 중 300일쯤 잔병들과 투병하던 일상을 살았었다. 의료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8282 하고 저렴한 의료혜택을 받으며 국민건강보험 만만세를 외쳤다. 미루고 미루었던 인증 번호를 마련하고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이용할 수 있는 한국형 문명인으로 마침내 발돋움했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엄마의 고향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아이들은 도시생활을 싫어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리워한다. 방과 후나 학원이 끝난 후에 먹던 팥빵과 팥빙수를, 지하철역 앞에서 먹던 와플을, 태권도 선생님이 직접 데리러 오는 태권도 학원을,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졸린 눈을 비비며 외할머니와 함께 시청하던 일일연속극을, 한국의 냄새를 말이다. 도대체 아이들이 말하는 한국 냄새는 어떤 냄새일까? 어릴 적 내가 외갓집에 가는 길에 맡았었던 꽃냄새나 단무지 냄새 같은 냄새일까? 아니면 시골 물만 먹은 내 아이들의 코에만 맡아지는 도시의 냄새일까? 내가 한국 사람이라서 단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한국의 냄새를 상상하다 보니, 시드니 킹스포드 스미스 공항에 도착할 때마다 나의 콧구멍에 찾아오는 호주의 냄새 = 누린내가 솔솔 나는 것 만 같다. 나도 모르게 오랜 습관인 콧구멍을 벌렁거린다.
내게 여행은 돈을 지불하고 추억을 수집하는 소비활동이다. 어학연수와 해외 생활도 인생이란 여행의 카테고리에 함께 포함하여 정의한다. 여행의 추억중 제일 즐거운 일은 역시나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우리는 돌아오기 위해 끊임없이 떠난다. 익숙하고 편안한 곳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말이다. 아이들은 시드니로 기쁘게 돌아오기 위해 한국 냄새가 나는 엄마의 고향에 왔고, 나는 언젠가는 나의 살던 고향으로 기쁘게 돌아오기 위해 호주 냄새가 나는 시드니로 떠난다.
떠나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세월과 함께 아이들이 자라 홀로 엄마의 고향을 찾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오면 엄마 없이 혼자서 한글로 쓰인 표지판이나 안내문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단지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아닌 적어도 반쪽은 한국 사람으로 엄마의 고향을 다시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팥빵과 팥빙수를 먹으며 제 엄마인 나를 생각해 주기를...